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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유한 한국상 긴장한 중국상(우리문화 이웃문화 3)
• 한국상
• 너털웃음 짓는 촌로의 얼굴
• 유유자적속 은근한 자신감
• 중국상
• 잔뜩 찡그린 미간 무기로 칠듯한 긴박감 서려

쌍둥이라 해도 똑같지 않다. 똑같은 얼굴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해도 좋을만 하다. 그만큼 사람들 얼굴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알아차린다. 남들은 구별하기 어렵지만 어머니는 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 손자는 할아버지를 닮았다. 외할아버지 쏙빼어 닮았다는 소리도 듣는다. 형제 뿐만 아니라 사촌도, 육촌도, 팔촌도 닮아서 이웃의 다른 사람들과 구분이 된다.

같은 사람은 없지만 닮은 사람은 주변에 허다하다. 그래서 민족마다 얼굴바탕이 다르다는 평판을 듣는다.

사람들의 혈액을 조사하여 보았더니 유전자의 구성이 서로 달라서 각기의 특성을 지니게 되어 차이가 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중국인과 한국사람은 서로 다르다.

일본 의학전문가가 유전자를 분석하여 얻은 결론이다. 그에 비해 일본인들은 한국사람과 대단히 유사하다고 한다. 이점은 나도 공감한다. 중국이나 일본을 다녀 보면 그런 인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만 그런게 아니다. 사람들이 새긴 조각작품에서도 차이는 드러난다. 한국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리숙한 구석이 있고 그래서 다정하게 느껴지는 표정의 얼굴을 갖고 있다. 매몰차지 못한 인상들이다.

조선조에서는 능이나 묘 앞에 석인(돌사람)을 조각하여 세웠다. 입은 의복이나 패용한 무기들은 정연하게 조각하여 빈틈이 없는데 주인공의 얼굴만은 두루뭉수리다. 인심 좋은 시골마을의 너털웃음 잘웃는 할아버지 같다. 눈도 크고 코도 크고 입도 걸죽해서 남성다운 매력이 넘치지만 꽉 짜여 빈틈없이 정돈된 그런 얼굴은 아니다.

서울 근교에 가면 조선시대 왕릉들이 있다. 능 앞에 서있는 석인들을 보아도 한결같이 그런 얼굴들이다. 세속에 찌들어 매몰차게 다그쳐진 야무진 얼굴이 아니다. 동구능의 석인들도 한결같은 그런 인상들이다.

어찌 보면 탈속한 경지에서 유유자적하는 이의 면모를 닮았다. 격조 높은 인물이 지니고 있는 온유한 인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의 돌사람 옆에 가 서서 발돋움 하며 키를 맞추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보면 어쩌면 그토록 닮았으랴 싶게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중국 북경에도 명나라 임금 능앞에 서있는 석인상들이 있다. 여럿이 죽 줄지어 서있는데 우리 처럼 갑옷 입고 투구 쓴 무장도 그중에 있다.

중국의 석인상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양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그래서 더욱 성정이 조민해 보인다. 들고 있는 무기로 당장 내려쳐 박살을 낼듯한 긴박함이 서렸다.

얼굴이 서로 다르듯이 성정도 서로 다른가 보다. 우리의 석인이 우리답다면 명의 석상은 중국인답다고 할 수 있고 그래서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나 보다. 당나라 임금 능앞에도 석인상들이 있다. 여럿이 줄지어 서있다. 외국에서 보낸 사절들이 그렇게 도열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 시기는 당나라 문화가 난숙기로 접어든 시대다. 여기 조각들도 당대를 대표한다고 할만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비슷한 시기의 신라 임금님 능에도 외국인 용병을 새겨서 세웠다. 낙락장송을 배경으로 삼고 당당하게 버티고 섰다. 주먹 쥔 손을 단단히 세웠다. 충천하는 의기가 충만하다. 입가엔 지긋한 웃음이 번졌다. 무엇이 온데도 두려울것 없다는 자신감이다.

전에 하버드대학에 가서 강연한 적이 있었다. 건릉과 괘릉의 석상을 환등기에 비추면서 비교하였다. 중국문화와 우리문화의 특성을 살펴보는 내용이 발표의 주제였다.

참석한 한사람이 도중에 묻는다. 혹시 건릉과 괘릉의 석상을 바꾸어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내가 바싹 긴장해서 더듬는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서 물었다. 괘릉 석상이 수준 높아보이냐고 하였더니 서슴없이 그렇다는 대답이다. 괘릉 석상 뒤의 소나무를 가리키면서 북경 명십삼릉 석상 뒤에 이런 소나무가 없지 않느냐고 하였더니 그제야 그렇구나 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 한다. 신라 작품이 당나라의 것을 능가한다는 사실이 잘 납득되지 않나 보다.

프랑스에 한옥 지으러 가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았다. 그쪽 미술가들도 괘릉의 조각이 월등한 수준이라고 평가하였다.

"세상에 수준 높은 놈이 수준이하의 것을 본뜨는 수도 있남 . "

함께 자리해서 슬라이드를 감상하던 유학생 미술학도가 독백을 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중국에서 비롯하였고 우리는 내내 그것들을 본뜨는 일로 급급하였다는 그의 상식에 구애되었던 것이다.

그날 그 학생은 신이 나서 마구 달리다 하마터면 교통사고를 낼뻔했다고 이튿날 말했다. 우리 작품이 그만큼 수준이 높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면서 이제 자신있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을것 같다는 마음도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쌍둥이 자녀를 구별하듯 우리도 우리 것을 알아야 하겠다.

며칠 뒤 유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같은 내용의 슬라이드로 또 이야기 하였는데 더 많은 유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이제 정확한 것을 알아야 하겠구나 하는 기미가 그들의 열정 속에서 녹아나고 있었다. <글=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03.21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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