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2 11:01

부경(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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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주일대의 고구려 귀틀곳간 (우리문화 이웃문화 6)
• 네기둥위에 뗏목벽 중원에는 없어
• 왜에 전래후 공공건물 창고로
• 단창-쌍창형 2종 오키나와에도 흔적
• 동대사 쌍창형은 고구려벽화 그대로
  
압록강과 두만강 변의 시골집들을 찾아갔다. 도회지와 산곡간을 두루 다녔다. 대부분의 집에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창고가 있었다. 주로 강냉이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시골 사람들이 지금도 스스로 투덕투덕 작은 창고를 짓고 있어서 보잘것 없는 규모이긴 하나 그야말로 집집마다 작은 창고가 있다(가가유소창) 고 한 옛 기록과 아주 부합됐다.

중국인이 기록한 사료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전)에 고구려 사람들 생활풍습을 묘사하면서 집집 마다에 창고가 있더라고 했다. 당시 중국인들이 볼 때 고구려 풍습이 특이한 까닭으로 이런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중국의 중원지역 집에는 이런 창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삼국지 는 집집마다에 작은 창고가 있다 고 하고는 그 말미에 창고의 이름을 부경이라 부른다(명왈부경) 고 했다. 부경이란 명칭의 창고 역시 중원에는 없다.

고구려의 고유한 명칭을 그대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래서 사서의 어디를 찾아도 한자 단어로는 찾기가 어렵다.

부는 지붕의 용마루나 집의 대들보라는 의미와 나무로 엮어 만든 뗏목이란 뜻을 지닌다. 경은 창고의 한 종류이다. 보통 곳간은 짐을 바닥에 쌓도록 되어 있는데 경은 네 기둥에 의지하고 지표에서 뚝떨어진 허공에 마루를 깔아 바닥을 만들고 거기에 필요한 것을 저장하도록 한 형태이다. 우리가 말하는 뒤주와 유사한 구조이다. 부경은 네발 달린 뒤주형 곳간을 짓는데 벽체를 뗏목 엮듯이 구성하였다는 뜻이다. 통나무로 뗏목 엮듯이 하였다면 귀틀집 밖에는 없다. 귀틀로 지은 창고라는 형상에서 부경이란 독특한 명칭을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원엔 귀틀집이 드물다. 공공건물에서는 감옥이나 그렇게 든든하게 지을 정도이다. 이는 귀틀집이 나무가 무성한 산림지대에 분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고구려 부경은 압록강이나 두만강 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구려의 다른 문물과 함께 왜국으로 진출한다. 왜로 건너간 부경은 집집에도 있었겠지만 공공건물의 창고로도 채택된다. 지금도 볼 수 있는 경도(교토)나 내량(나라)의 여러 사원(당초리사 동사 동대사 등등) 속에 있는 아제쿠라(교창조) 라고 부르는 유형의 것이 그것들이다.

지난 87년부터 매년 갖고 있는 조선일보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단원들은 일본에서 부경을 본다. 동대사 대불전을 보고 조선일보 탐방인도 요원들을 따라 뒤쪽 산기슭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삼월당이 나오고 그 동편에 팔번궁(하치만궁) 이 있다. 이 신궁 마당에 부경이 있다. 단창이다. 잘다듬은 통나무로 조성한 고급스러운 구조의 부경이다. 동대사 경내에는 쌍창형의 부경이 또 있다. 동대사 강당 서북편에 따로 일곽을 이룬 곳에 정창원이 있는데 정창원 창고건물이 바로 쌍창형 부경이다. 아주 고마운 우리의 유적 중의 하나가 고구려 고분이다. 고구려 고분인 압록강변 마선구 제1호분 벽화에 쌍창형 부경이 그려져 있다. 정창원 부경과 같은 유형이다.

정창원이란 명칭은 원래 보통명사였다. 백제에서 건너간 왕인 박사는 나라의 곳간에 출입하는 물화를 장부에 기재하도록 제도화하였다. 그의 후손들이 구라비도(량인) 가 되고 용도에 따라 출입하는 업무를 감당하였다. 국가재정을 다스리는 소임을 맡은 것이다. 창고를 개방하는 일을 임금께 품하고 윤허를 얻어 시행하는데 그런 곳간들을 정창원 이라 하였다. 한참 시절엔 여러 곳에 있어서 보통명사로 지칭되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곳간들이 스러진다.

동대사의 것만이 남는 사태가 된 것이다. 동대사 부경에는 신라에서 보낸 뛰어난 문화유산들이 보장되어 있어서 워낙 귀중하게 여겼던 터라 여러번 수리하고 개조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고 명칭도 고유명사로 굳어지게 되었다. 절의 부경을 여닫는 일은 주지의 책임이었다. 그의 허락이 떨어져야 입회하는 스님이 지켜보는데 물화를 출입하였다. 그런 곳간을 강봉장이라 불렀다. 이에 해당하는 곳간이 일본 나라의 법륭사에 있다.

법륭사 강봉장은 정창원 과 달리 귀틀집이 아니다. 기둥을 세우고 토벽을 친 목조건축물이다. 밑에 받침 기둥 여러개를 세운 것은 정창원 부경과 마찬가지다. 이런 유형을 다락곳간 이라 부른다. 부경에 속하기는 하되 귀틀집이 아니라는 점에서 따로 분류하여 호칭하는 것인데 408년에 조성되었다고 추정하는 고구려 고분(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벽화에 그에 방불한 다락곳간 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시대의 다락곳간형 부경인 것이다.

벽화 상태가 좋지 못하여 전모를 다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구조와 형상을 보면 법륭사 강봉장과 같은 건축물을 묘사한 것이다.

중토의 중원에도 경이 있다. 왕정이 쓴 왕씨농서 에도 소개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 농가에서 보는 뒤주와 유사하다. 나락을 갈무리하여 넣어 두었다가 필요에 따라 앞쪽에 설치한 빈지문을 위로 부터 열면서 고무레로 나락(벼)을 긁어내어 담아다 쓰게한 구조이다. 고구려의 부경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고구려의 부경은 왜국에까지 파급된다. 뒷날 일본이 되고서도 이 부경은 지속되어 국가나 사원의 중요 창고로 명맥을 지켜왔다. 이 부경은 유구에 까지도 흘러가 오늘도 그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글=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가-추-창 등 동이자원 가능성"/명지대 진태하 교수

우리문화-이웃문화 의 지난 회 연재에서 집가 자와 돼지우리 관계를 보여준 상징적 자해와 도옥사진이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학계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 연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한국국어교육학회장을 맡고 있는 진태하 교수(명지대)는 돼지의 명칭어원고 란 논문을 통해 갑골문부터 문자의 발전과정을 도해, "한자는 한족만이 아니라 조선족을 포함한 동이-동방민족이 만든 글"이라고 밝혔다. 가 자는 한족이 만들기 어려운 글자일 뿐 아니라 중국의 문자학자들이 2천여년 동안 자원을 연구하고도 밝히지 못한 것은 그들이 만든 글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 30여년 자학을 연구해온 진교수는 가을(추) 자를 다른 예로 들었다. 추자의 갑골문은 불(화)위에 메뚜기가 있는 모양 . 이는 메뚜기를 잡아 불에 구워먹는 철이 가을 이라는 절기의 상징성을 상형화한 것이란 풀이다. 메뚜기 를 벼화 로 바꾼 것은 메뚜기의 획이 복잡하여 벼에 붙어사는 특성에 착안, 화+화로 간편화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진 교수는 곳창 자 역시 고구려의 창고인 부경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즉석에서 자원을 도해했다. <서희건 기자>


                                                                       발행일 : 1995.04.11 기고자 : 신영훈 서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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