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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반점 민족' 건축양신 중-남미까지 퍼져
• 고구려 계열은 돌구조물 위에 탑 쌓은게 특색
• "멕시코 고산족 풍습 우리와 비슷"
• 피라미드배총 장군총 빼닮아
    
우리문화 이웃문화 취재팀이 경북 의성-안동의 방단으로 쌓은 석탑을 답사하고 그 소견을 조선일보 95년 4월1일자에 보도하였다. 보통의 석탑과는 다른 특수 형태이고 고구려 장군총과 유사하다는 사실과 그것이 일본에 까지 파급되었음을 밝혔다.

그 이후로도 탐색을 계속하였다. 방단을 돌로 쌓은 묘탑이나 건물을 세우기 위한 구조는 여러나라에 분포되었다. 불교발상지인 인도를 비롯해 동남아 여러나라, 네팔이나 티벳 그리고 서역과 중동, 스키타이 활동지역과 지중해 연안에서 같은 발상의 구조물을 볼 수 있었다.

1968년 올림픽때 멕시코시에 가서 한국정 을 지었다. 틈틈이 주변 유적지를 순방하였는데 방단으로 치켜 쌓은 대규모 건축물들이 있었다. 신전을 그런 방단위에 높게 지었다. 그때 들은 바로는 이런 방단 쌓은 종족의 궁둥이에 푸른점(청반점)이 있었다고 하였다. 한국정 준공식날 그곳 사람들은 내가 입은 한복의 대님 맨 바지를 쓰다듬으며 전에 이런 의복을 입었었다고도 하였다. 높은 산에 사는 고산족은 거의 우리와 같은 풍습을 지녔다고 교포가 귀띔해 주었다. 같은 계열의 민족이 방단을 공유하였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방단이란 점에서 이집트 피라미드도 같은 계열이 된다. 카이로의 방추형 피라미드를 제외하면 주류가 방단형이다. 스핑크스가 지키고 있는 거대한 방추형 피라미드 뒤에 있는 작은 규모의 배총중에도 여실한 방단형이 있다.

인도를 비롯한 불교국 방단은 대부분 묘탑계열이다. 고구려 태왕릉을 비롯한 장군총 계열의 방단들도 묘탑의 성격을 지녔다. 비교하면 인도계 방단을 모방하지 않은 고구려인들의 창작으로 완성되었다.

집안에 가 높은 데 올라 내려다보면 압록강에 이르기까지의 벌판에 대소의 고분들이 있다. 근교의 것까지 다 합치면 1만개가 넘는단다.

몇몇을 보고 다녔다.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든 토분도 있고 돌을 층급으로 쌓은 석분도 있다. 토분도 밑동에 돌로 방단을 쌓았다. 이들 고분정상에는 큼직한 정방형 판석이 있었던 듯하다. 판석 중앙에 키가 크지 않은 동자주 처럼 다듬은 것이 있었다고 보인다. 대략 8각으로 다듬고 끝을 뾰족하게 하였다. 그쪽 전문가들이 고분 옆에 따로 세우고 석주라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제자리에 서있는 것이 거의 없다. 흩어져 있는데 주변을 찾아보면 발견되기도 한다. 동구석분군이라 지정한 곳의 토분정상에 판석이 있고 석주는 굴러떨어져 땅에 반쯤 묻혀 있었다. 한 증거를 볼 수 있었다.

묘탑 전형에 석주가 필요불가결한 존재라 하고 작은 고분들이 장군총이나 태왕릉을 모본으로 삼아서 발해로까지 이어지고 그래서 벽돌로 쌓은 무덤위에 5층의 전탑을 세운 예를 남기게 되었다면 고구려 성시의 태왕릉과 장군총 등 대규모 묘탑 정상에 목탑의 다층건물류가 올라섰을 가능성도 높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에는 여러 유형의 무덤이 있다. 전방후원분도 그중의 하나다. 압록강 남쪽 자강도 한 지역에서 1세기경에 만들어진 고분이 발굴되었다고 일본 국영방송이 보도하였고 실제 답사한 내용을 작은 책에 담아 보고하였다. 비록 규모는 작으나 일본 전방후원분보다 분명히 앞선 것이라고 실토하였다. 고구려 계열의 무덤이라 할 방단의 묘탑유형이 일본에 있다.

오카야마(강산)현 웅산유적도 그중의 하나다. 영산사 경내에 있는데 방단위에 3단을 쌓았다. 아랫단 일변 길이 7.75m, 두번째 단 사방 중앙에 각각 감실이 있고 불상이 안치되었다. 이곳에서 질그릇인 통형(높이1백60㎝)토기가 나왔고 삼채유의 작은 항아리도 출토되었다. 이들로 보아 탑이 조성된 것도 대략 내양(나라)시대로 추정하였다.

웅산-련산일대에 같은 유형의 유적이 30여기 있는데 이것이 그중에서 제일 크며 고식을 지니고 있다. 754년에 일본에 건너간 감진화상(668~763)의 계단일 것이란 설 말고도 경총설, 탑설, 분묘설이 있다.

오사카 근교에 행기(행기)스님이 쌓았다는 토탑이 있다. 지금은 흙무더기이나 옛 그림에는 방단의 7층탑으로 묘사되어 있다. 방단에 토탑과 석탑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유사한 방단건축이 우리나라 의성군에 있다. 사면의 감실에 불상이 안치되었다. 의성에서는 석탑이라 부른다. 7층형이다. 같은 경북인 안동에도 석탑이 있다. 형태는 같고 감실은 없으며 5층이고 정상부에 가련하나 상륜 부재가 있다. 가야국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의 능으로 알려진 방단 석조물이 산청군에 있다. 역시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았다.

경주 낭산에도 방단 석탑이 있다. 마을에서 능지탑 이라 부른다. 다른 방단 건물들중에서 가장 정제된 구조물이다. 기단에 십이지상까지 장엄하였다. 이는 변조된 것이고 원래는 거대한 소조 여래상을 사방 감실에 봉안한 방단 석탑이었다. 무너진 돌무더기에서 겨우 지금 만큼의 모습을 건질 수 있었다. 탑정상엔 역시 목조건물이 있었다고 추정되었다.

이 유적을 처음 주목한 당시의 국립경주박물관 홍사준관장(고인)과 전 동국대총장 황수영박사는 신라통일의 영주인 문무왕이 삼국사기 기록처럼 고문외정 에서 불교식으로 화장하였다면 왕성의 중요한 문을 고문으로 보았을때 문밖의 터(외정)에 해당하는 랑산 아래의 이 석조물이 화장한 처소에 기념으로 조성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였다. 역시 묘탑의 한 유형일 수 있다.

초기 백제의 강역이던 한강유역인 방이동에도 방단의 유적이 있다. 백제 초기 고분으로 알려져 있다. 살림집들이 고분위에 있었고 몹시 교란된 것을 지금처럼 정리하였다. 옛모습을 다 재현시켰다고 하기는 어렵다.

고구려를 비롯하여 백제-신라-가야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주도하던 왜나라에 골고루 방단 구조물이 분포되어 있다. 이들이 동편을 대변한다면 우리가 설정한 문화회랑의 서쪽 끝에는 이집트를 위시한 방단의 건축국들이 있다. 또 문화회랑의 여러 거점에도 방단류의 구조물들이 연계를 이루며 존재하고 있다.

서쪽에서는 이른 시기에 시작하고 일찍 끝을 지었다면 동편에서는 늦게 시작하여 중세까지 지속하고 있었다. 그것도 토-석간에 다양한 구조물을 남기고 있어 발전상을 보인다. 방단 구조를 통하여 하나 더 더듬을 수 있다면 현존하는 각 시대 목-석탑의 이중묘단이 그로부터 시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다.

방단 건축물은 역대를 통하여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고 문화발전에 기여하였음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12.12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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