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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회귀의 "저승저택" 산기슭 축조
• 봉분형태 뒷산과 닮아 일에도 전래된듯
• 자리 중시 한민족 사생관 표출
• 구미선 벽돌-일엔 돌무덤 유구도 석실분묘
    
누구나 가는 곳이다. 외국에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있는 그 곳이 외국인들에게는 아주 흥미있고 신비스러운 모양이다.

외국의 유수한 박물관의 학예관 한 분이 고유한 한국 문물을 수집하러 한동안 우리나라에 머물다 떠났다. 떠날 때 그는 만사가 신비스럽더라고 고백했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어서 사진 찍느라 얼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여기저기에서 잘 가꾼 무덤들도 보았다. 잘생긴 조선 백자 사발을 엎어 놓은 듯한 무덤들이 그렇게 좋아 보이더란다.

서양에서는 무덤 조차 가공된 자재로 만든다. 살아서도 흙냄새 맡기 어려웠지만 죽어서도 마찬가지라면서 죽어서 흙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일이 얼마나 행복하냐는 것이었다. 흙을 덮어 저승의 저택인 무덤을 만든다는 일 그 자체가 자연으로의 회귀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그가 오히려 열을 올렸다.

살아서 천연스럽게 생활하다가 죽어서 천연의 본고장으로 되돌아 가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이 세상에 다시 더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그의 주장에 나도 동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낙양성 십리허에 영웅호걸과 숙녀들이 묻힌 무덤이 허다하다 는 노랫소리만 믿고 찾아봤다. 그러나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중국 문화혁명 때 다 파헤쳐버려 없어졌다고 한다. 그 이후로 무덤 쓰는 것을 금하고 있다는 설명인데 몇년 지난 뒤에 찾아간 금년에는 몇 곳에서 새로 쓴 무덤을 보았다. 큰 길가에는 돌을 다듬어 팔고 있는 비석 가공공장도 눈에 띄었다.

산기슭에 붉은 벽돌로 쌓은 작은 무덤도 있었다. 아직 꽃이 상하지 않은 신작의 유택이다.

구미에선 벽돌로 축조한 무덤들을 보았다. 지상에 축조한 유형들이다. 왜 그렇게 을씨년스러운지. 무덤가에서 사랑을 속삭인다는 분위기와는 생판 달랐다.

일본 무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마을에서도, 신사 주변에서도 혹은 이름 난 사찰 경내에서도 본다.

일본 사람들은 유골을 작은 돌무덤에 봉안한다. 일종의 납골당인데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가족묘로 구조되어 있다. 개폐가 고려된 석실분묘의 한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은 비석을 세워 묘표석을 삼는다. 더러 석등을 세워 장엄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꽃꽂을 돌화병 마련에 유의하고 있다.

좁은 자리에 가득하게 들어서 있어서 답답해 보인다. 형상이 아름답다거나 하는 겸사는 사치스러울 것 같다.

석실분묘는 유구에도 있다. 공묘형식으로 목조건물을 본뜬 돌집의 형상과 거북이를 닮은 것 두 종류가 있다.

거북이 모양의 것은 가족묘로 몸체는 산기슭에 숨기고 있다. 이는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하는 형태라 한다.

어머니의 여근에서 태어났다가 대지의 여근 속으로 되돌아 갔다는 의미를 지녔다는 것이다. 이런 관습은 한반도에서 전래된듯 하다고 하였다.

되돌아 가는 자리가 어디이어야 하느냐는 설정에 따라 논리가 형성된다. 또 민족의 사생관이 정의 되기도 하고 종교 이론의 기반이 거기에서 배태되기도 한다.

묻힌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기운이 다시 돌아온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기회를 다시 잡는다. 여측 없이 시행하여야 생애를 누릴 수 있다.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음을 조물주에게 알린다. 순응을 나타낸다. 그런 표지일까.

돈황 사막의 토분에서 미묘한 것이 발견된다.

가는 나뭇가지로 기묘한 형태를 만들어 꽂았다. 봉분 정상에 꽂는다. 잠자리채 같기도 하고 무선전화의 안테나 처럼 생겼다. 그 외의 형태도 허다하다.

무덤 앞의 토실은 아버지 보다 먼저 죽은 불효의 아들을 가매장한 것에 쓰이는 것이라한다. 사막은 썩지 않는 풍토이다. 미라들이 다수 발견되는 것은 풍토 때문이다.

일본 열도도 알칼리성이 강해 잘 부패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도도 그렇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화장법이 성행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특히 반도에서는 잘 썩는다. 그래서 형체가 사라져야 으뜸이라고 하였다. 가령 이장하기 위하여 파묘하였을 때 관속이 깨끗해야 명당자리에 드셨다고 후손들은 만족스럽게 여긴다. 자취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새로운 시작의 조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새로운 시작은 산에서 부터 비롯된다.

아들을 빌기 위하여 산으로 가고, 도 닦기 위하여 산으로 가며 죽어서도 산으로 간다.

풀숲의 무덤에 성묘갔다 오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어디 다녀오시냐고 물으면 산소에 갔다 온다고 대답한다.

산은 우리가 돌아가 머무르는 모태이며 재생하는 탄생의 근원지이다.

돌아가 머무르는 동안 거처할 유택을 짓는다. 그 봉분의 형태가 뒷산을 영락 없이 닮는다. 충남 예산의 추사(김정희)선생 할아버님 산소도 뒷산을 빈틈 없이 닮았다. 산 같은 집을 저승에 마련한 것이다.

때가 되어 산천정기를 받고 탄생해서도 뒷산 닮은 집을 짓고 살아왔다. 역시 우리에게는 산이 삶의 무대였던 것이다.

외국인 학예관 눈에도 이런 점이 아련히 감지되었나 보다. 그의 감탄에는 표피적인 것 보다는 다분히 내면적인 추구가 함축되어 있었다. 그는 떠나면서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유택이 한국의 금수강산에 가득하더라고 하였다. <글=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06.20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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