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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목한 입-감아돌린 입술 "세계으뜸"
• 어머니 정성밴 장독대엔 조상슬기 가득
• 통전-쪽전-모전 입술모양도 가지각색
• 서양인들 감탄 일선 헤벌레 입벌어져
  
"미국 하버드대학 도예과 교수가 다녀갔어요. 세계 최고의 작가로 지목받는 분이죠. 역시 한국의 독이 최고라는 칭찬이었어요. 전에 배씨 성 가진 독 짓는 분이 미국에서 이름난 대학을 순방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독을 만들었답니다. 통역도 겸할겸 설명하느라 함께 있었는데 크지 않은 분이 간단한 연모만으로 물레에서 자기보다 키가 큰 독 짓는 것을 본 미국인들이 다들 자지러 지던군요. 이후로 미국 도예가들에게 한국의 독은 너무 잘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

이화여대 도예과 조정현 교수의 이야기다. 그만한 크기의 독을 거침없이 만드는 민족은 전세계에서 흔하지 않고 그중에서도 우리 독이 으뜸이란 평판을 듣고 있다는 전문가의 말이다.

올해 2월에 중국 무안의 자주요에 다녀왔다. 19세기 이전 중국에서 손꼽히던 이름난 도자기 고장이다. 분장하는 방법으로 굽던 곳이며, 독도 많이 생산하였었다고 한다.

여기 가마들은 양쪽에 모스크 처럼 생긴 굴뚝이 있는 단가마의 둥근 형태이다. 우리 두꺼비 가마와 유사하다. 들어가 보니 가마 속은 넓고 높다. 여러층으로 그릇들을 겹쳐 쌓고 구웠나보다.

우리 용가마에서도 대략 세 켜쯤 층으로 쌓고 독을 굽는다. 이때 아래에 놓이는 독은 위에 올려놓은 독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말하자면 하중이 고려되어야 한다. 다른 부분은 끄떡 없는데 취약한 부분이 입이다. 그래서 구연이 주저앉지 않게 단단히 만들어야 한다. 선사시대 이래의 질그릇들은 대부분 노전 이라 하는 형태를 하고 있다. 입을 곧고 높게 일으켜세워 힘을 갖게 한 것이다. 자주요에서 구워낸 독의 입이 이런 유형이다.

구워놓고 보면 노전 은 예쁘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 독 짓는 이들이 발명해낸 것이 통전 이란 기법이다. 삐죽한 입술을 감아돌려서 테를 만들었다. 단단하게 하면서도 멋을 부리는 일이다. 기능 위주에서 치장이 도입되는 것인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뾰족하게 만든 쪽전 , 모가 나게 접은 모전 , 둥그스럼 하게 궁굴린 통전 의 구분이 생긴다.

제일 멋쟁이는 넙전 이다. 넙전은 맨 위층에 올려놓고 구워서 하중을 염려하지 않아도 좋았다. 입술을 넙죽하고 후덕하게 만들어 돌린 것이다. 큰 몸뚱이와 어울려 의젓한 모양으로 된다. 이 정도가 되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어 독 짓는 이들이 애써 만들었다.

이런 독을 왠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보기 어렵다.

최근 압록강 유역의 한 집에서도 노전의 큰독을 보았다. 역시 노전이 보편적이란 의미가 되겠다.

전에 일본에 가서 보니 일본 독들도 대부분 하이칼라 처럼 삐죽이 올라선 노전들이다. 노전은 입이 몸체에 비하여 오므라들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형태가 헤벌레하게 보인다. 다부지고 앙당그러진 모습을 이루지 못한다.

입이 넓다는 것은 볕을 많이 받겠다는 의미도 된다. 일본은 알칼리성이 강한 풍토여서 잘 썩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발효음식이 잘 성숙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본의 간장, 된장은 그 정도이고 고추장은 아예 없다. 김치 담그는 일이 유행해도 감칠 맛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익히는데 문제가 있어 그렇다. 또 독의 입이 그렇게 생겨서는 아름답기가 어렵다. 오히려 유구 독이 세련되었다. 고려와장이라 새긴 글씨있는 막새가 유구에서 출토되듯이 질그릇이나 사기그릇의 근원이 우리에게 있다.

지금 오키나와의 수도인 방패(나하)시 북방에 독곡(요미탄손 독 짓는 곳이란 뜻인지)이란 고장이 있다. 임진왜란 때 납치당한 도공이 진출하여 정착한 결과로 생겨난 도자 마을이다. 지금은 명소로 알려졌는데 여기 가마는 우리식의 용가마이다. 이웃의 옹기굴에서 보는 친근한 그것과 같은 형상이다.

우리 독은 쓰임에 따라 크기도 형태도 다양하다. 술독은 아주 크다. 몇섬도 담을 수 있다.

간장독, 된장독도 크고 우람하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형태가 다르다. 그만큼 다채롭고 잘생겼다.

우리는 아주 옛날부터 간장, 된장을 담가 먹었다. 683년에 신문왕이 장가 들면서 왕비에게 폐백한 납채중에 간장과 된장이 있었다. 삼국사기 의 기록이다.

김칫독, 새우젓독, 물독도 모양이 서로 다르다. 옛날부터 그랬던듯 하다. 357년에 그렸다는 안악3호분 벽화에서도 그점을 볼 수 있다.

사람이 빠질까봐 나무로 난간 두른 우물가에 입이 작고 배 부르며 키 큰 독 두개와 그보다 운두 낮은 것 하나, 물 긷는 여인 옆에 드무 모양의 물독이 하나 놓였다. 용도가 다른 독들이다. 질그릇의 큰 독이 한강가의 풍납리 토성에서 출토되었다. 백제의 초기 작품이다. 시초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독이 오늘에 이어진다. 한옥 집집의 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독이 모여있다. 멋이 담긴 곳이며 할머니와 어머니 마음이 서려있는 곳이다. 아침 저녁 뚜껑을 여닫는 정성 말고도 멀리 출행한 자식의 안위를 장의 변화로 가늠하며 살폈고, 업을 모셔두고 가족의 무사함을 빌기도 하였다. 그만큼 신성한 장소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다른 나라에선 왜 장독대를 볼 수 없는지에 대한 의문을 비롯하여 조교수의 독에 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 하다. 우리 독이 동양을 대표하여 세계에서 각광 받는다는 사실을 언급하고는 격앙된 어조로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장독들을 다 버리고 가는 세태를 한탄했다. 이제는 다시 구할 수 없는 그 귀한 것들을 보존할 방도가 없다고 안타깝게 말하였다.

귀중한 것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이다. 답답한 노릇이다. <글=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07.11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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