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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갸름하고 귀티나는 고구려인 용모
• 백제-신라인도 원숙한 문화 반영
• 석굴암-천왕상 중-일 신장상과는 판이

12월 초 조선일보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단을 따라 한바퀴 돌고 왔다. 아스카에도 들렀다. 역시 고송(다카마쓰)총이 인기였다. 전문가의 현장설명을 듣고 단원들은 모조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는 곳에 들렀다.

유명한 벽화가 모사되어 있다. 그중에 인물을 그린 것은 두 폭인데 서벽과 동쪽벽에 있다. 서벽엔 네 여인이 있다.

앞선 윗저고리 입은 여인이 주인공인듯 하다. 진주선으로 살짝 얼굴을 가렸다. 준수한 모습이다. 얼굴이 길다는 뜻이다.

신식 말로는 말상인데 고구려에서는 귀골상으로 쳤다.

뒤따르는 녹두색 옷 입은 이가 작은부인 같고 붉은 색 윗옷 입은 이와 그 뒷 사람은 시종들이다. 붉은 색 옷을 입은 여인은 볼과 턱에 살이 올랐다. 이 얼굴은 천격이다. 그에 비하여 두 부인은 준수하고 길쭘한 모습이다. 고구려 상류사회 출신답다. 알맞게 살이 쪘지만 당의 여인들 처럼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두 턱이 진 그런 풍모가 아니다. 당장 고송총 벽화의 여인상이나 남자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붉은 옷을 입은 여인 얼굴로 당풍이 가미된듯이 해석하려 한다면 그것은 아직 고구려 귀인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에 묘사된 주인공들의 얼굴은 한결 같은 준수한 귀골선풍이다. 쌍영총에서도 볼 수 있다. 고구려 불상들도 긴 얼굴로 완성되었다. 경남 의령군에서 가난한 어머니가 길 닦는 일을 하다가 발견한 고구려의 연가칠년명(539년? 599년?) 금동여래입상(국보 119호)의 얼굴도 그렇게 준수한 상모다.

고구려와 이웃하며 세력을 형성한 북방민족인 선비가 건국한 북위가 다른 북방민족들이 차지하고 있던 서역을 장악한다. 문화통로를 통하여 동점하는 불교와 만난다. 초기 불교문화의 기반을 이룩하는데 불상도 조성한다. 그들 불상도 상호가 길다. 고구려와 유사하다.

백제 불상도 준수한 모습이다. 부여 정림사터에서 출토한 흙으로 구워 만든 작은 보살상도 갸름하며 통통한 편이다. 신라에서도 그런 얼굴을 볼 수 있고 가야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런 얼굴은 볼-보살상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기마인물상이라 부르는 신라시대 흙을 빚어 만든 말탄 사람의 얼굴도 적지 않게 길다.

백제 조각가 사마안수 지리불사가 조성한 일본의 법륭사 금당의 석가삼존상도 얼굴이 길다. 석가상은 이마 넓이의 두배나 될 만큼 긴 얼굴이다. 법륭사 몽전관음, 백제관음과 아스카의 대불도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결 같이 긴 얼굴들이다.

신라 통일기를 거쳐 고려에 이르러서도 준수한 얼굴의 행진은 계속된다. 이런 경향은 민간에서도 마찬가지였고 후대로 이어진다. 조선왕조의 장승들도 긴 얼굴에 속한다. 남원 실상사 어구의 장승 얼굴도 어지간히 긴데 경남 남해의 나무장승은 기묘한 얼굴이 몹시도 길다. 그와 첫대면하면서 우리들은 즐겁게 웃었는데 긴얼굴의 결정판인 셈이다. 첫 눈에 퍼뜩 백제 보살상이 들어 오더라구 . 그래서 느닷없이 달려들어 사진기를 들이대었더니 무심히 걸어가던 아가씨가 그만 기겁하여 도망치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부여 박물관장을 오래 하시다가 돌아가신 홍사준 선생이 들려줬다. 그 말씀을 하시던 날, 우리들은 그 모험이 재미있어 한바탕 웃었는데 홍관장은 못내 아쉬워했다.

그분의 지론은 지극히 생각을 골똘히 하면 모습이 떠올라 그리거나 조각하면 그만큼 생동하는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자기 식견에 그 바탕이 있다는 교훈이셨다. 얼굴을 잘 보고 다니라는 당부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얻은 소득이 내게 있었다.

그날도 내양의 국립박물관에 갔다가 공원 길에서 일본 옷으로 정장한 중년남자와 마주쳤다. 어이쿠- 얼마나 놀랬는지 동대사 대불전 뒤편에 서있는 목조의 신장상 얼굴과 꼭 닮았다.

또 한번은 서안에 가서 당나라 현장 스님의 대안탑을 돌다 마주친 사람은 며칠전에 본 낙양 용문석굴에서 상봉한 신장상과 얼굴이 같았다. 한족의 전형적 얼굴이라 할만 하였다.

신장상은 경주 토함산 석불사(속칭 석굴암)에도 있다. 사천왕상이다. 네 신장의 얼굴은 서로 다르다. 그렇긴 해도 내양나 낙양에서 본 얼굴과는 바탕이 다르다. 석불사 신장들은 신라사람다운 안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은 민족에 따라 서로 달리 생겼다고 한다. 유전자에 의하여 그렇게 형성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얼굴은 한 인간의 개성이라고도 한다. 개체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심상이라고도 한다. 마음 쓰임에 따라 얼굴에 귀천이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같은 상류사회의 신분을 누리고 있는 수준에서 한편은 귀골선풍인데 비하여 한쪽은 그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면 그 까닭은 마음을 양성하는 문화의 바탕에 그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와 그 후예들이 조성한 작품의 얼굴들이 한결같이 귀골인 것은 그렇게 완성시킬 수 있었던 문화기반이 난숙하였던 결과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 벽화의 잘 생긴 얼굴을 보면서 내 얼굴도 그만큼 길어졌을까 거울을 보지만 아직도 내 얼굴은 그만큼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어 한심스럽다. <글=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12.19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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