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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속의 한민족사탐방
• 고분등 현장서 느낀
• 조상 발자취 ‘수확’
• 파고 4m 폭풍우 속
• 선상강의 인상적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단 4백93명은 11월25일 부산항을 떠나 일본의 후쿠오카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파고가 4m에 달하는 악천후였지만 탐방단원들은 이 항로를 따라 항해했을 1천년 전의 조상들을 생각하며 배멀미를 견뎠다. 그들 대부분은 초-중-고의 교사들이었다.

규슈의 후쿠오카를 거쳐 다자이후(대재부) 후나야마(선산)고분,구마모토,아소산,벳푸,오이타(대분)를 거쳐 세토 내해,오사카 아스카 나라 교토등 뱃길 1,300km와 육로 700km를 6박7일 동안 주파하는 강행군이었다.

올해로 10년째,횟수로는 13회째 조선일보 주최로 진행된 이 탐방은 지금까지 8천여명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체험을 통해 일본속의 한민족사를 느끼게 했다.

여행 첫날 서희건 조선일보 출판국 부국장은 강풍과 파도로 배가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쓰러지려는 탁자를 부여잡고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일본 속의 한민족사를 소개했다.

뗏목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그리고 중국으로 항해하며 고대 한민족의 해양 활동을 연구한 윤명철 박사는 「동아 지중해와 고대 일본」을 강의했고, 목수한옥연구소장이며 문화재 전문위원인 신영훈씨는 불국사의 아름다움과 일본 문화재 속에 숨겨진 한국식 건축술에 대해서 설명했다.

선상강의를 들은 교사들은 일본 속에 남아있는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백제계가 왜의 도움으로 부흥운동을 벌이다 금강전투에서 패한일.

그 패배 후 일본으로 돌아와 쌓은 다자이후의 성. 일본에서 백제의 멸망을 663년으로 기록하는 이유. 나라의 동대사(동대사)를 수호하는 고구려 개(고마이누)등에 대해서 보고 들었다.

일본 열도에서 고분이 발굴될 때마다 일본 학자들은 왜 이를 백제계냐 신라계냐 가야계냐 혹은 고구려계냐로 입씨름을 벌이면서 「만세일계」의 천황의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없는지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고대 일본이 한민족의 활동 터전이었다는 사실은 유물이 있는 그 지방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라 현의 이와모토 마사오(암본정웅)부지사는 탐방단에 대한 인사말에서 『4-5세기 당시 최첨단의 과학기술이 여러분의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양국의 문화를 직접 확인해 달라』며 경주와 나라,부여와 아스카가 자매결연을 맺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권강기 교사(부산 용호중)는 『국사 교과서에는 「백제가 일본 아스카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한마디밖에 없는데 이제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들려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배안. 김병모 한국 고고학회 회장은 한국 문화는 북방 기마민족 문화 뿐 아니라 남방 해양문화에서도 영향을 받았으며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도를 통해 전래된 제3의 문화도 있었으므로 세계사 내에서 한민족사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 김왕근기자 >

                                                                                발행일 : 1997.12.05  기고자 : 김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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