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의 살림집` 실습장을 찾아서(중앙일보)

by 운영자 posted Jul 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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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황금리 바탕골예술관 옆으로 비포장 길 십여리를 찾아들어간 한 한옥 살림집 건설 현장.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 듯 막바지 뙤약볕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인부 차림새가 아닌 10여명의 사람들이 현장 인부들을 도와 나무를 깎아 나르며 연신 이마에 땀을 훔치고 있다.

"이 나무는 2층 널마루에 쓸 겁니다. 양쪽에 음양(陰陽)의 홈을 파 연결해주지만 길이가 길어 뒤틀릴 수 있으므로 우물마루와 달리 보이지 않는 홈사이에 못질을 해줘야 합니다. "

틈틈이 일하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나무의 용도와 작업방법에 대해 설명해주는 이도 있다.

이 곳은 한옥문화원(원장 신영훈.66)이 개설한 '21세기 한국의 살림집' 현장 강좌가 이뤄지는 곳. 원래 정은경씨네 살림집을 짓는 현장인데 한옥문화원측이 설계.시공 등에 도움을 주고 한옥짓기 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흙먼지 속에서 삽과 망치를 들고 집을 짓고 있는 수강생은 모두 10명. 비싼 강의료를 내고 공사현장 잡부를 자청한 사람들은 20대 여성 건축학도를 비롯해 대학교수.치과의사.자영업자 등 다양하다. 심지어 집안 살림만 하는 주부도 끼어 있다.

건축과 대학원생인 정민애(27)씨는 "책에서 배워 이해하기 어려웠던 한옥을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기 위해 참여했다" 고 말했다.

양평읍 백안리에 사는 이병권(43)씨는 "화가인 아내의 작업공간을 한옥으로 꾸며주기 위해 한옥 배우기를 시작했다" 고 한다.

수강생마다 강좌를 신청한 배경은 차이가 있지만 한결같이 우리 전통 한옥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한옥에 좀더 가까이 가기 위해 몸을 던지는 현장 실습을 택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회색빛 서울에 사는 사람들. 지난 4월 첫 수업인 터 닦기를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이른 아침을 먹고 자동차로 두시간 이상 달려와 하루종일 인부들과 작업을 했다.

지금은 기와까지 올려 외관상 완벽한 2층 귀틀집(통나무를 쌓아올려 지은 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남은 마루 공사와 내부 시설공사만 서두르면 강의가 끝나는 이달말엔 완공도 가능한 상태다.

"얼마전 기와를 올려 예쁜 처마 곡선이 완성됐을 땐 마치 내 집을 완성한 것처럼 가슴이 뭉클했어요. "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사는 양남실(39)주부가 그 때의 감동을 전했다.

50대의 몸으로 마루 깔기에 열중인 서울대 도예과 장수홍교수도 한옥을 배우는 수강생. 그는 "한옥을 배우면서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온 기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큰 행운" 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천년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기와지만 미래의 주택 소재로 쓰려면 무게를 낮추는 등 풀어야할 문제가 많다" 고 덧붙였다.

치과의사 신완용(48)씨는 "보통 사람들이 '집 한채 지으면 10년을 늙는다' 말로 집짓기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지만 이런 대리경험을 통해 집 짓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 고 강좌를 통해 얻은 수확을 설명했다.

이 곳의 현장 강의를 책임지고 있는 강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도편수(목수중에 우두머리)인 조희환씨. 조씨는 "전통한옥을 보존하는 가장 바른 길은 우리네 살림집으로 끌어 들이는 것" 이라며 "몸을 아끼지 않고 한옥을 배우려는 수강생들의 자세와 이들이 꿈꾸고 있는 한옥 생활에서 한옥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고 말했다.

한옥문화원(http://www.hanok.org)(02-562-0303)은 신영훈원장이 전통한옥의 보급과 후계자 양성을 위해 지난해 설립한 곳. 2년 4학기의 전문인 양성과정을 운영중이다. 이번의 '21세기 한옥의 살림집' 처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특별강좌도 수시로 마련한다.

오는 11일에는 서울 강남 하나로종금 사옥에서 '21세기의 한옥' 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신원장을 비롯해 건축평론가 김종헌 배재대 교수, 건축가 승효상씨, 풍수지리학자 최창조씨 등이 참석해 한옥의 미래상을 모색해 볼 계획이다.

양평=유지상 기자 < yjsang@joongang.co.kr>
2002.01.29 16:2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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