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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석 끼워맞춰 1000년 지나도 그대로
• 요철맞게 다듬은 돌얹어 수평고름 현대건축에도 계승
• 일,알칼리 토양 통나무 사용
• 중,황토-돌 깍아 수직쌓기
    
기울어진 마당끝을 수평으로 올려 세우기 위해 쌓은 구조물을 축대라 부른다.

현대인들은 산기슭 경사진 터전을 운동장처럼 널찍이 내려 깎아 평지를 만들고 거기에 집 짓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그렇게 정지 할 중기도 없었지만 그보다도 산천 정기를 중요시했다. 흘러드는 산천정기를 보중하기 위하여 낮은 곳에 흙을 부어 북돋워 썼다.

축대는 지역에 따라 쌓은 방법이 서로 다르다. 우리나라는 거대한 돌을 산에서 떠다가 축조하는 돌축대를 으뜸으로 친다. 봉황산 부석사의 축대를 명품으로 손꼽는 까닭도 그런 특성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작은돌 맞물려 보완

큼직한 자연석을 쓰되 서로 이가 맞도록 골라가며 맞물려 쌓는 정성이 그득하다. 우선 그 노력에 감탄한다. 이가 맞물리지 않으면 작은 돌을 물려 보충해 나간다. 그것도 차근차근 정돈해 보기좋게 만든다. 보는 마음을 즐겁게도 하고 안심도 시켜준다.

쌓은 방법은 큰돌로 이를 맞춘 것. 큰돌사이에 작은 돌도 보인다. 이 돌은 긴 뿌리를 안으로 깊숙하게 박았다. 그래서 큰돌뒤에 채운 적심석(표면 석재를 보강하기 위하여 채운 석재들)과 받고 누르며 한 몸이 된다.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성향을 잡아주고 주저앉으려는 타성을 억제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쌓은 축대는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어제 완성한듯이 생생한 기운으로 버티고 섰다.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명을 받들어 개창한 절이다. 원래 그 터에는 절 짓는 것을 반대하는 무리들이 거처하고 있었다. 절이 서는데는 이런 전설이 담겨 있다.

선묘 아씨가 신통력을 부렸다. 산기슭의 집채만한 바위가 슬슬 공중으로 떴다. 모든 무리들이 의상대사의 법력이라 깨닫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선묘아씨는 의상대사가 떠난 바다에 투신해 용이 되었다. 용의 신통력으로 의상대사를 도왔다. 큰 바위가 공중에 떠오른 것도 그의 힘이었고 바위가 떴다고 해서 부석의 이름이 지어졌다.

의상대사는 감복한 무리들과 절짓는 역사를 시작한다. 마음으로 열복한 무리들의 놀라운 집중력이 발휘되었다. 대단한 작품이 탄생하였다. 저만하려면 충분히 그런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도 좋을 것같다. 더러 고려때 다시 쌓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목재 더디썩는 풍토

일본 교토 청수사(기오미스데라)의 큰 법당 축대는 굵은 통나무로 만들었다. 깊은 골짜기로부터 기둥을 세워 높게 받쳐가며 조성하였다. 이는 일본이 아니고는 보기 어려운 축대라고 할 수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런 목재는 곧 썩어서 오래 부지하기가 어렵다. 그에 비하여 일본은 알칼리성이 강한 풍토라 더디 썩는다. 쉬 썩는다면 그렇게 할 수없는 것이다.

중국의 돌로 쌓은 축대는 규모가 장대하다. 여러 시대 축조한 축대들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있다. 대부분 큼직한 돌을 방정하게 다듬어 높다랗게 치켜 쌓았다.

북경에서 수리하는 건축물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적심은 돌이나 벽돌이 아니라 진흙이었다. 황토인데 중국 황토는 우리와는 달랐다.

요동(황토 벼랑을 파고 지은 집)의 경우에서도 볼 수있듯이 거의 수직으로 된 황토 벼랑이 도처에 있다. 우리 같으면 당장 사태가 나거나 무너질 그런 형상인데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 그런 황토가 적심이어서 석축하는 축대도 거침없이 높게 올려 쌓고 있다. 황토의 나라가 지닌 특성이라고 할 수있다.

북경만 해도 높이 쌓은 축대로는 신화원(이화원 여름 별궁)의 불향각 아래 높은 돌축대를 비롯하여 여러 예를 손꼽을 수있고 같은 유형을 청나라 황실에서 경영한 열하(현재의 숭덕) 별궁에서도 볼 수있다. 거침없이 수직의 상태로 높게 치켜 쌓았다. 중국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고 하겠다.

자연미살린 이중구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쌓기가 어렵다. 서울 남대문 중수때 공사감독을 하면서 실제로 본 바로는 홍예문의 육축(육축 문루를 높이 세우기 위하여 쌓은 기단)은 지하로부터 커다란 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완성하고 있었다. 거의 흙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우리나라 축대는 그래서 쌓는데 많은 공력이 든다. 불국사만 해도 동방에 다시 없는 기교를 다한 축대와 돌층다리를 구조하는데 30여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특히 청운-백운교가 설치된 구역의 축대는 연화-칠보교가 있는 부분보다 어렵게 쌓았다.

청운-백운교 구역의 축대는 상하 2단의 구조이다. 아랫단은 다시 하부에 거대한 바위를 쌓은 부분과 그 위쪽으로 다듬은 장대석으로 조성한 부위가 있다. 두가지 형상을 복합시킨 특색을 보였다. 이는 아주 보기 드문 방식이다.

부처의 나라(불국)를 의태하기 위하여 도리천의 수미산을 자연석으로 쌓았다. 그 위를 보궁(부처의 집)이란 의도에서 다듬은 돌을 쌓아 표현하였다.

다듬은 돌에서부터 축대의 수평을 바로 잡고 있다. 수평 고름을 하면서 돌출한 자연석을 깨뜨려 내지 않고 되도록 천연스러움을 유지하게 하였다. 그러려니 다듬은 돌을 가공하여 높낮이를 조절하는 수밖에 없다. 또 자연석이 튀어오른 형태에 따라 장대석을 도려 내었다.

자연석은 아무래도 이음이 일정하지 않아 벌어지면서 간격이 생기기도 한다. 이 부분을 장대석으로 메웠다. 어려운 작업인데 이때에 그레질 이라는 고급의 그렝이법 을 응용하였다.

그레질 고도로 발달

자연석 생긴대로 장대석을 다듬어 영락없이 이 맞춘듯 완벽하게 접합시키는 방법이 그레질 인데 우리나라에서 고도로 발전하였고 지금도 돌주초위에 나무 기둥을 세우면서도 활용하고 있다.

그렝이법으로 조성한 예는 고구려의 장군총이나 태왕릉에서도 볼 수있다.

아주 옛날부터 구사하던 기법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레질 은 그레칼 로 하는 기법이다. 그레칼은 콤파스처럼 생겼다. 뾰족한 침이 있는 쪽을 아랫돌에 닿게 한다. 돌 생긴대로 움직여 주면 연필 꽂은 부분이 윗돌에 그대로 그려낸다. 연필로 그려진 대로 다듬어 접합시키면 상하가 영락없이 밀착하게 된다. 원리는 간단하나 이 기법을 구사하는 기능은 쉽지 않다. 우리들의 장기라고 할 수있다. <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08.29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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