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역사 나들이(조선일보)

by 운영자 posted Jul 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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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살 먹은 돌다리 건너 황룡사탑 재현한 보탑사까지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을 남하하면 진천이 나온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볼거리는 없다. 하지만 조급하게 살아야 생존 가능한 이 시대에 조급함을 잠시라도 벗어나게 해주는 역사의 흔적이 도처에 있다.

농다리

다리는 읍내에서 중부고속도로를 바라보며 구곡리쪽으로 가면 나온다. 고려말, 그러니까 14세기에 만든 다리라 했다. 혹은 세월을 거슬러 삼국시대에 이미 세웠다고도 했다. 그 기나긴 세월을 농다리는 이 작은 천변에서 천변을 잇고 서 있으니 그 인내심이 놀랍다. 원래 길이는 100m였다. 수백번은 치렀을 장마 홍역에 양쪽이 떠내려가 지금은 93m 정도만 남아 있다. 폭은 3m 정도. 암숫돌 한쌍씩 24칸이다. 암돌과 숫돌을 엇갈리게 끼워맞춰 언뜻 봐도 거대한 지네 형상이다. 석회도 바르지 않고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지만, 삼국시대 작품이 맞다면, 1000년이 넘는 세월을 그리 큰 해침 없이 인내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 땅 최고(최고)의 다리다.

상선약수(상선약수), 노자(노자)는 물 흐르듯 사는 삶을 최고의 덕목이라 했다. 농다리는 개울 흐름의 강약에 맞춰 진짜 지네처럼 구부정하게 생겼고, 돌들은 그 흐름에 따라 조금씩 흔들린다. 그래, 눈 앞의 견고함을 포기하고 다리는 영원한 멸실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미호천 상하류 가득 들어선 공장들 탓에 다리 아래에는 음습한 탁류(탁류)가 흐른다. 아이들과 함께 놀러온 한 사내는 “먹지 못하는 고기만 살고 있다”고 한탄한다. 다리는 변함 없되 물은 이리 바뀌었다. “산 속 바위에 화랑들 발자국과 말굽 자국이 찍혀 있었다”고 기억하는 사내와 함께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사람들은 몇번이고 농다리 위를 오가고, 작품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즐겨 필림에 담는다.

김유신 장군 탄생지와 보탑사

장군 탄생지는 읍내 농다리 반대편에 있다. 군청에서 천안쪽으로 가다보면 장군의 영정을 모신 길상사가 나오고 이어 향토민속자료전시관이 나타난다. 길상사를 들른 뒤 탄생지로 가는 길은 차츰 비포장으로 변한다.

김유신은 이곳 진천에서 태어나 훗날 삼국을 통일했다. 뒷산 태령산에 태(태)를 묻을 때 무지개와 함께 신들이 내려와 태를 가지고 승천했다고 한다. 생가터에는 장군의 업을 기리는 비석이 있고 터 뒤편으로 장군 태실로 오르는 산길이 이어진다. 산행은 40분. 그리고 탄생지에서 이어진 길 끝 산 속에 보탑사(보탑사)가 있다.

절로 가는 좁은 길엔 하도 나무가 우거져 하늘이 뵈지 않는다. 보탑사는 오는 9일로 세워진지 딱 4년을 맞는 어린 절이다. 원래 절터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절을 없애니까 안좋은 일이 많았는데 잘된 일”이라고 했다. 마을뿐 아니라 여러모로 잘된 일이었다.

보탑사는 거대한 3층 목탑이다. 목수(목수) 신영훈 선생이 삼국시대 목탑형식을 빌어 고스란히 재현한, 2000년대의 문화재다. 쇠못 하나 쓰지 않는 순수한 목탑으로 높이는 무려 42.71m로 웬만한 고층아파트 높이. 80m가 넘는 황룡사탑에는 못미치지만 옛사람들의 건축술을 재현한 기념비적 건물이다.

1층은 사방으로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석가여래와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이 있다. 약사여래 앞에는 초파일에 딴 수박들을 놔뒀다. 수박은 동짓날 배를 가르면 썩지 않고 젤리처럼 말라 있다고 한다. 2층은 대장경을 봉안한 윤장대, 3층은 미륵불 3존을 모신 미륵전이다.

귀로

절에서는 되도록 해거름에 나오도록 한다. 김유신 생가터쯤에 이르면 노변에 풍경소리라는 찻집이 있다. 차 한 잔 마시고 달빛 아래 서 있으면 귀에는 풍경소리가 낭랑하고 숯굽는 향내가 온몸을 휘감는다. 밝은 낮에는 만날 수 없는 노변 풍경이다.

                                                                              발행일 : 2000.06.08   기고자 : 박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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