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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해외한민족연공동탐사롯데그룹6협찬
• 벽화 공간 메우기 차원 초월 현대적 감각 손색없어

오회분 5호묘는 현재까지 집안에서 확인된 20기의 고구려 벽화고분 중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일반의 내부관람이 허용된 곳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20달러를 내면 장군총과 호태왕비(광개토대왕비), 태왕릉, 환도산성, 오회분 5호묘로 연결되는 일련의 고구려 유적 자유 입장권을 받을 수 있다. 5호묘의 묘실 안에는 물론 죽은 이의 관(관)이 남아있을 리 없다.

그러나 관을 올려놓았던 관대(관대)는 남아있었다. 모두 3개. 가운데와 왼쪽, 오른쪽의 순으로 크기에 차이가 있다. 안내한 집안박물관 관계자가 설명했다. "가운데는 주인남자, 왼쪽에는 부인, 오른쪽에는 첩의 시신을 모셨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죽은 이의 영혼이 얼마만큼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일반적으로 고대인들이 영혼불멸의 사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시신을 모신 묘가 웅장하고 화려할수록 저승에서의 삶도 행복하리라고 믿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묘에 관대를 셋씩이나 놓거나 묘실 벽화에 죽은 이의 집 구조, 심지어 주방까지 그려 넣은 고구려인들의 의식을 설명할 수가 없다. 묘실 내부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물론 벽화를 그린 것이지만, 그 벽화에 화려함을 더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각종 장식-문양이다. 각 고분 벽화들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의 사신(사신)이나 각종 생활풍속 등의 구체적인 형상을 담은 그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이 형상과 형상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운 무수히 많은 뜻 모를(?) 상징 문양들-. 그것들은 고구려인들의 신앙과 미의식에 접근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키이다. 나아가 삼국시대 이래 기와와 구리거울, 범종, 도자기, 단청, 나전칠기, 떡살, 민화에서 심지어 창호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생활용구 속에 연면히 이어져 내려온 각종 문양과 장식의 원형들이다.

개국설화-불교 등 밑바탕

한국 문양에 관한 본격 연구서인 임영주 전통공예관장의 한국 문양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문양의 기원은 신석기시대의 암각화(경남 울주군 반구대 암각벽화)에 나타난 물고기-짐승 무늬나 청동기시대의 토기에 나타난 빗살무늬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 고분 벽화의 문양은 근대와 뚜렷한 연관을 갖는 가장 오랜 형태의 것이란 점, 전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양적인 풍성함을 자랑한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재전문위원 신영훈씨는 고대의 문양이 기우 기복장수 부귀 다산 벽사 등의 희망을 자연 형상을 상징화해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동당초무늬와 연꽃무늬, 불꽃무늬, 구름무늬, 해-달-별무늬, 사신무늬, 비천무늬, 귀갑무늬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각종 문양들은 우리민족의 개국설화라든가, 재래의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후대 중국이나 서역으로부터 불교-도교사상 등을 수용-섭취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민족의 고유한 미 형태로 형성됐다. 그중에는 색상과 형태면에서 지금보기에도 깜짝 놀랄 만큼 현대적인 감각의 것도 적지 않다.

집안의 고분들 가운데 특히 문양이 풍부한 벽화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분은 무용총과 각저총 삼실총 등. 그러나 조선일보 취재팀의 확인 결과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오회분 4-5호묘와 장천 1호분 벽화 중에도 매우 많은 양의 문양들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4호묘와 5호묘는 각종 휘황찬란한 문양이 거대한 묘실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어 문양이 빈 공간을 부수적으로 채운 것이 아니라 마치 사신이나 인물 형상이 문양의 바탕 위에 그려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또 장천 1호의 묘실 천장에서는 오늘날과 거의 비슷한 북두칠성 문양이 확인됐으며, 전실 천장으로 꺾여져 올라간 벽에서는 탐스런 연꽃무늬와 비천 인물 문양이 그려져 있어 불교전래 초기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디자인은 상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심지어 떡 하나를 만들어 먹는 데도 각종 다양한 무늬를 넣었다는 것을 평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뿌리가 되는 것은 물론 고구려의 고분 벽화이다.


                                                                          발행일 : 1993.09.14  기고자 : 김태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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