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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로 확산되는 1,500년전 첨단난방
• 깔고앉는 불의 문화 난로생활권과 대비
• 중 동북3성-양자강유역 현존
• 선진국들 도입붐 일선 안보여
  
건장한 남편이 두 부인과 방에서 상에 차린 음식을 들며 담소하는 모습을 고구려 화가가 각저총 벽화에 그렸다. 아! 고구려 전에 전시됐던 이 벽화는 많이 퇴락하였지만 남편이 의자에 걸터 앉았음을 알 수 있다. 두 부인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앉았다. 치마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두다리를 포개어 한쪽으로 뉘고 비스듬히 앉은 자세다. 지금도 짧은 치마 입은 여인들이 방석에 다소곳이 그렇게 앉는 것을 흔히 본다.

이 벽화는 두 부인이 방 한쪽에 시설된 쪽구들에 앉아 맨바닥에 의자 놓고 걸터앉은 남편과 담소하고 있는 장면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쪽구들은 낯이 설다. 지금은 어느 집에나 방 전체에 구들을 들여 사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발굴한 고구려 건물터들의 구들 흔적은 동편에서 북쪽벽 따라 ㄱ 자 형으로 이어져 있다. 방 일부에만 시설한 쪽구들인 것이다. 궁실이나 살림집이 마찬가지 구조였다.

말 타려면 신발을 단단히 신어야 한다. 드나들 때마다 가볍게 벗을 수 있는 신발은 적합하지 않다. 벗기 어렵다면 신 신은 채 드나들 수 있는 방을 만들어야 한다. 고구려 건축가들은 방의 맨바닥을 낮게 하고 한편에만 높게 쪽구들을 설비했다. 이런 방식이 발해를 거쳐 후대에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길림민거 라는 책에 동북 3성(흑룡강, 길림, 요녕성) 대부분의 살림집에 쪽구들이 있더라고 하였다. 한족, 만족, 몽고족 집들도 다 그렇더라고 하였다. 직접 보고다닌 이 고장의 집들도 다 그와 같았다.

고구려의 관습이 지속되는 것이라 해석된다. 이 쪽구들 항(캉) 은 고구려문화가 보급되는 지역, 후대에 여운이 파급된 고장에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다.

산서성 오대산에 가서 여러 불적들을 본 적이 있다. 남선사 법당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그때 남선사 바로 옆, 황토벼랑 아래의 마을에도 들렀다.

낭떠러지 황토벼랑에 굴을 파고 집을 만들었다. 요동이라 부른다는데 이웃 집들도 한결같았다. 벼랑에 통로가 빠끔히 열렸고 좌우에 창이 하나씩 달렸다. 창이 있는 공간이 방이다.

통로로 들어가 방을 들여다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창 아래편으로 쪽구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고장에까지 쪽구들이 파급되어 있으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강석굴이 있는 대동시에서 기차 타고 태원까지 가는 동안 좌우 황토벼랑에 수없는 요동 들이 즐비했다. 독립가옥 보다 더 많아 보였다.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쪽구들 있는 집이 중토 호남성에도 있다는 소식이다. 고구려가 망하자 30여만명을 강제 이주시켰다. 이 고구려인들이 양자강 유역에 정착하였다 한다. 고구려 후예들이 호남성 일대에 나누어 살던 끈질긴 흔적이 남겨진 것이나 아닌가 싶다. 궁금한 일이다. 중국인들은 맨바닥인 방 한편에 침상을 만들고 거기에서 잠을 자고 있어 쪽구들 갖춘 집과는 대번에 차이가 난다. 밖에서 봐도 굴뚝만 보면 구분할 수 있다. 그러니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침상에 기거하는 이들은 불기(화기)를 멀리한다. 쪽구들에 사는 사람만큼 불에 민감하지 못하다. 겁나는 불은 눈앞에 두어야 안심인데 고구려인들은 불을 깔고앉아 생활하고 있다. 그만큼 응용능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불의 사용으로 인류문화가 발전하였다 한다면 고구려인들은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고 그래서 국중대회 때 국동대혈(지금도 국내성 부근에 유구가 남아있다)에서 불의 수신 을 받들고 굿을 하였었다.

구들은 후대에 반도 남쪽으로 보급되어 17세기엔 제주도에까지 당도한다. 남하한 구들은 마루와 함께 한옥의 정형을 이뤄 한국 집문화의 대표적 특색이 된다. 구들과 마루가 연합한 한옥은 세계에 다시 유례를 볼 수 없는 독특한 성향을 지닌 살림집이 되었다.

백제나 신라처럼 고구려 문화도 왜국에 강력하게 전파된다. 지금도 고구려 영향을 받은 유적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들 들인 집의 존재는 그 기미를 남기지 않았다. 더러 산곡간의 집은 맨바닥에 거적만 깔았다. 방 중앙에 화덕을 설치하였다. 화덕은 마루 깐 집에도 있다. 일본에서는 근세에 이르러 다다미 깐 방이 등장하는데 화덕은 그대로 지속된다. 구들 없는 집에서의 소용으로 화덕이 으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화덕은 제주도에도 있다.

구들은 현대건축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최신예 난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수삼년전에 한옥 한 채를 프랑스 파리의 센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지은 적이 있다. 본 사람들이 그림 같다고 했다. 이 집을 지을 때 미처 구들장까지 갖고가지 못해 고심하고 있을 때 프랑스 건축가가 전문가를 소개해 주었다. 고충을 말하였더니 걱정 말라면서 이튿날 구들을 시공하는데 놀랍게도 우리들이 온수보일러 난방법에서 이용하는 방법과 같았다. 구들 바닥에 파이프를 설비하는 방식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자재들은 다 기성품이었다. 그만큼 구들식 난방법이 보급되어 있다는 증좌가 되겠는데 시공자는 천연덕스럽게 최신예 난방법이어서 다투어 채택하려 하는 바람에 일꾼들이 몹시 바쁘다고 엄살까지 떨었다.

고구려인들이 발전시킨 구들이 이제 세계인의 집을 차지하고 들어가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시작하고 있다. 좋은 세상이 되었다. <글=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04.25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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