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3 16:39

대청(조선일보)

조회 수 2471 추천 수 20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삼복불볕더위에도 시원한 바람이 설렁설렁 (우리문화이웃
  문화 21) 한옥 처마 그늘속 마당공기와 대류현상
• 마루-구들의 수평구조는 남북방문화 "절묘한 절충"
• 일-류구 마루 깐 방 발달
• 고구려 살림집선 높은 토상
• 서역까지 고구려식 흙침대

벌써 중복이 지났다. 막바지 더위이다. 도시는 찜통인데 산골짜기 한옥은 더없이 시원하고 쾌적해 지내기에 꼭 좋다.

대청은 여름나기엔 안성맞춤이다. 뒷벽 바라지창을 활짝 열고 육간대청에 큰대자로 벌렁 누으면 세상 그렇게 편할 수 없다. 도침 베고 죽부인 끼고 누으면 소소한 바람결에 달콤한 낮잠에 빠져 든다. 여름 휴가의 즐거운 한때가 무르익는다.

한옥의 처마는 깊다. 깊다는 말은 기둥으로 부터 서까래 끝이 앞으로 훨씬 돌출하여 있다는 뜻이다. 북위 37도36분 근방 서울지방의 하지날 정오의 해가 뜬 각도는 약 70도 가량이다. 정말 중천에 높이 뜬다.

그래서 깊은 처마는 볕을 가리는 차양이 된다. 처마에 그늘이 생긴다. 그늘은 시원하다. 동구밖 정자나무 그늘에 모여 더위를 식히듯이 그늘 밑은 시원하다.

처마로 그늘이 생긴 대청은 뙤약볕이 지글거리는 백토 깐 마당 보다 훨씬 시원하다. 자연히 공기가 유통한다.

그러니 대청엔 늘 바람기가 있다. 부채라도 부칠라치면 시원한 맛있는 바람이 살살 파고 든다. 어! 시원타-.

서구식 건축은 직사광선을 방안에 나우 받아들이길 희망한다. 햇볕만 보면 벗고 누워 일광욕 해야하는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구조이다.

햇볕만 번뜻하면 얼른 양산을 쓴다. 우리 여인들의 순발력이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집에 직사광선 도입형의 현대건축이 살림집을 지었다. 햇볕이 염치 없이 안방 깊숙이 침투한다. 뙤약볕에 달구어지면서 방안은 찜통이 된다.

빚을 내서라도 냉방시설 하지 않고는 못배겨낸다. 무제한으로 동력을 써서 강제냉방을 시킨다. 기름 한방울 나지않아 거금을 주고 수입하는 줄 번연히 알지만 죽겠으니 별도리가 없다. 아니면 집을 나와 시원한 곳을 찾아가는 수 밖엔 없다. 집이 사람을 내뱉는 꼴이다.

처마가 차양이 되어 그늘에 바람이 살랑거리면 아무리 무더워도 약간만의 냉기에도 시원해 만족할 수 있다. 그런 처마를 없애 버린 탓으로 저런 낭비의 체제가 구축되었다. 서구식 건축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데서 오는 실패의 한 항목이다.

풍토에 순화되어야 그 땅의 집이 되는 것이라면 양옥이 아직 한옥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법규도 원인을 제공한다. 처마깊이를 규제한 조항도 있다. 깊이가 1m를 넘으면 건축면적으로 계산하여 재산세를 물리는 기막힌 제약을 두고있다. 건평 50평일 때 1m넘게 옛식대로 처마깊이를 잡으면 80평이 넘는 대규모 건축물로 재산세를 물린다는 식이다. 처마를 발달할 수 없게하는 주범인 셈이다.

이로 인하여 태양열 활용이 막히고 그래서 쓸데없이 낭비하는 국민경제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이제는 정시해야한다. 끝내 이 모순된 조항을 개정하지 못한다면 이는 우리의 문화인식에 큰 문제가 있음을 자백하는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같다.

대청은 구들과 함께 한옥의 특색을 이룬다. 구들이 북방문화의 소산이라면 마루는 남방문화에서 발아하였다. 마루는 고온다습한 남방에서 지습을 피하기 위하여 큰나무에 의지하고 오두막집 짓는데서 부터 비롯된다. 지금 원두막과 같은 잔형을 남기기도 하였지만 마루를 높이 깐 시설이 한옥에 채택되면서 키를 낮추어 구들과 수평을 이루게 되었다.

구들과 마루는 아주 상반된 이질적 구조지만 한옥에서는 원래의 성향을 존중하여 구들방은 폐쇄적으로, 마루의 대청은 훨씬 개방했다. 겨울 추위를 막고 여름 무더위를 피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기막힌 절충의 지혜이며 북방과 남방문화의 조화로 이룩한 결과이다.

대청은 일본이나 중국에 없고 인도나 서역에도 없다. 일본이나 류구에선 마루 깐 방이 발달하였다. 중국 운남성의 간란형 다락집도 마찬가지. 유구 옛집에서는 산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엮어 마루로 하였고 간란의 다락집이나 일본집 마루는 쪽나무를 이어서 설치하는 장마루에서 발전을 정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만은 장귀틀에 동귀틀 여러가닥 꽂아 갈비뼈 모양으로 형성하고 동귀틀 사이에 청판을 빈지 드리듯이 끼워 넣어 우물마루를 만들었다. 독특하게 발전시킨 것이다.

고구려 살림집에 다락 곳간이나 부경외엔 마루 깐 방이 없었다. 대신에 높직하게 만든 토상이 있다. 그 위에 좌상을 놓고 올라앉는다. 이는 의자와는 다른형상인데 고구려 쌍영총의 주인공 내외가 앉아 있는 모습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7월초 우리문화 이웃문화 의 서역문화탐방단이 서역을 다녀왔다. 이상회 박사(성균관대-북경 청화대 교환교수) 등 관련학자들과 서희건 문화재전문위원 등 진용을 확대한 우리 탐방단은 그 곳에서 살림집도 열심히 살폈다. 그곳 살림집의 좌상은 아주 질박한 것이나 모직물의 포단을 덮었다. 벽화에서도 무늬 있는 모직물 전포가 보였다.

서역의 오아시스, 그 곳의 살림집에서 토상이 있는 방을 보았다. 이집의 안채에는 구들 들인 방이 있었다. 고구려계열의 쪽구들이었다.

한옥의 특색중의 하나인 마루가 나무 대신에 흙으로 판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서역의 고구려계열의 건축물을 통하여 확인해 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 일행은 하도 놀라운 일에 직면했던 것이다. 모두 정신이 어떨떨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08.01 기고자 : 신영훈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7-16 13:20)

(우)03056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길 103-7 전화 : 02-741-7441 팩스 : 02-741-7451 이메일 : urihanok@hanmail.net, hanok@hanok.org
COPYRIGHT ⓒ2016 한옥문화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