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3 16:52

꽃담(조선일보)

조회 수 2578 추천 수 2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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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장에 새겨넣은 "여운의 건축"(우리문화 이웃문화 26)
• 장수기원-우주원리 담아
• 중-큼직한 꽃무늬 테라코타기법 즐비
• 일-정중하고 반듯 흥취-정겨움 없어

나는 자주 경복궁에 가는 편이다. 즐거움이 있다. 꽃담 보는 맛도 빼놓기 어렵다.

자경전(내전의 하나) 서편에 샛담이 있다. 서쪽 왕비 침전인 교태전(중궁전)에 이웃해 있어 샛담이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교태전 뒷동산이 아미산이다. 벽돌로 치장하여 쌓은 굴뚝이 있다. 자경전 뒤뜰에도 굴뚝이 있는데 담장에 이어져 있고 안쪽 면에 십장생의 무늬를 놓았다. 아마 전 세계에서 이만큼 아름답고 대단한 굴뚝들은 다신 없을 것이다.

경복궁에서 가장 호사스럽게 단장한 곳이 이 일대이다. 담장 마다에 무늬가 있어 발길 닿는데 마다 아름다움이 넘쳐 흐른다. 합각에도 같은 멋이 서렸다. "담장, 담벼락, 합각, 굴뚝에 무늬로 장식한 것을 통틀어 꽃담이라 부르자"고 이화여대 도예과 조정현교수는 그의 글에서 주창하였다. 그는 담장 쌓으면서 깨진 기왓장이나 돌을 박아 넣어 장식한 것 부터를 꽃담의 시작이라고 보았다.

살림집에서도 기와 잇다 깨진 조각들, 말하자면 폐품을 이용하여 적절히 아름다운 담장을 만들었다. 여럿이 품앗이 하여 담장 쌓는 중에 곰살궂은 이가 파편에 걸맞는 형상을 창안하였다. 정겨움과 흥취가 넘치는 장면이 되었다.

정색하고 고급스럽게 훈련된 기술인이 쌓은 담장을 화문장이라 부른다. 소박한 유형과는 구분되는 것이지만 이들도 다 합해서 꽃담이라 부르자는 것이다.

시골 기와집 담장, 담벼락. 합각(팔작 기와지붕 끝의 삼각장의 부분)의 질박한 무늬는 애틋하고 새록하다. 절집의 깨진 기와조각 담장도 같은 분위기이다.

반대로 낙산사(강원도 양양군) 담장과 같은 담대한 작품도 있다. 벽돌로 높게 치쌓은 넓은 면적에 화강석을 둥글게 깎아 새알심 박듯이 일정하게 배열하였다. 일월성신의 의미이다. 우주의 운행이 거기에 있고 행복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엄청난 의도가 담겼다. 임금님 능의 곡장이나 궁궐의 담장에서도 볼 수 있다.

경복궁 자경전 서편의 샛담 바깥 벽 무늬는 다양하다. 현존하는 담장 중에서는 다시 보기 어려운 성정을 지녔다. 무늬는 크게 세 종류. 글자를 무늬 삼은 것 하나, 둘째는 삼화토(석회-진흙-석 비례를 섞어 이긴 흙)로 반듯한 화면을 만들고 거기에 소담한 무늬를 벽돌로 제작해서 완성한 것. 셋째는 담장의 남쪽 끝 부분에 따로 일곽을 형성하고 영롱의 무늬 구획에 나비-벌-박쥐나 꽃 등을 하나씩 넣어 조합시킨 것이 그것이다.

자경전 꽃담은 사고석(화강석을 다듬은 작은 석재)으로 세 켜를 쌓아 밑부분을 단단히 다지고 그 위에 붉은 색 별돌을 치쌓아 몸체를 만들고 위로 기와를 이어 완성한 것이 기본 바탕이다.

이중 붉은 벽돌을 쌓은 부분이 무늬가 차지할 자리가 된다. 사고석과 기와를 이은 접합부위에는 벽돌을 밀착시켜 쌓는다. 접착재를 넣지 않고 바로 쌓는다. 그러기 위하여 잘 갈아서 사용하였다.

이어서 무늬가 등장한다. 이때에는 붉은 벽돌 사이에 삼화토를 넣어 간격이 생기게 한다. 그 간격에 뿌리 박아 삼화토로 벽돌 표면의 일부를 감싸 바른다. 벽돌의 붉은색 면이 약 2분의 1 가량만 노출된다. 이렇게 싸바른다고 해서 이 기법을 면회법이라 한다. 이 면회법으로 우선 윤곽에 선을 긋는다. 액자를 만드는 것 처럼 정리하는 선이다. 한번 붓을 대면 끝이 없다는 무시무종문이다. 장수를 의미한다.

윤곽선 안통에 무늬가 자리잡는다. 삼화토로 방정하게 흰바탕 화면을 만들고 매화 옛등걸에 걸린 달, 나비가 날아드는 꽃, 묵은 대나무의 바람결 등등을 표현하였는데 밑그림에 따라 벽돌로 구워 조립해서 한 화면씩을 완성시켰다. 이 기법은 아미산 육각형 굴뚝에서도 응용되었다.

이들이 배열된 사이 마다에 도식된 무늬가 자리 잡았다. 도식된 것의 경직성과 화면의 유연성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어낸 뛰어난 작품이다.

북경에 가보지 못하던 시절엔 그쪽에 가면 이런 유형을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보다 솜씨 좋은 산수나 절지화를 감상할 수 있으려니 기대하였었다. 막상 여러해 동안 여기저기 다녀 보았는데도 그곳에선 아직 경복궁형 꽃담을 찾지 못하였다. 내겐 매우 의아한 일이다.

누가 내게 일러 주었듯이 사대를 표방하고 일일이 본떴다면 경복궁류의 원류가 자금성에 당연히 있어야 옳다. 경복궁 꽃담 원형도 거기에 있어야 할터인데 없다니 놀랍다. 웬일이람. 자금성의 내전 어구에 문이 있고 좌우로 담장이 섰다. 붉은색 넓은 바탕에 황색과 녹색이 위주된 테라코타의 꽃무늬를 큼직큼직하게 장치하였다.

이런 구조의 담장은 북경이나 숭덕(열하)의 여러 중요 궁전, 사찰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담장은 아니지만 테라코타의 작품으로는 북경 국자감의 패방(일종의 표문)등이 일품이다. 유약을 입힌 테라코타이다.

우리에겐 이런 유형의 현존하는 담장이 없다. 경복궁형 기법의 꽃담은 고래하는 것이라 추정되나 북경식 테라코타 기법은 전래되는 것 같지 않다. 우리에게도 사천왕사(경주 남산아래)터에서 수습된 녹유 입힌 사천왕상류의 테라코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북경류와는 애초에 기법이 다르다고 동행한 도예전문가들은 분석하였다.

고려시대 상감청자로 만든 도판이라 부르는 부재로 창이나 문의 윤곽을 장식하였던 것이 있다. 이는 테라코타는 아니고 오히려 서역의 타일과 유사한 성격으로 보인다.

테라코타의 생성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북경형이 차지하고 있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한번쯤 타진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도 그날 그곳에서 제기되었다.

일본 동대사(도오다이지) 담장에 기와쪽을 줄맞추어 박은 토담이 있다. 우리가 이웃에서 흔히 보는 토담과 닮았다. 우리 것은 어리숙하고 들쭉날쭉인데 동대사의 것은 너무 정돈되고 정확하여 압도적이다.

정중하고 반듯하기로는 법륭사(호오류지)의 바깥담장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안동의 하회마을에 가면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무늬 없는 토담이 법륭사 바깥담과 같은 유형이다. 하회 담은 삐뚤하고 불룩하고 잘숙해서 여운이 있다. 법륭사 담은 구김살 하나 없는 깎은 서방님 맵시이다.

청풍이 넘나드는 집에 가릴 것 없으니 담장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다. 큰짐승 막는다고 담장으로 막고 보니 앞이 막힌다. 답답한 것을 면해 보려고 조금 손대어 맛을 살렸더니 어느덧 발전하여 권위의 상징이 담장 속에 들어 앉았다. 그런 추세에 비하면 경복궁 꽃담은 수줍음을 머금고 아직도 한편에 다소곳이 서있는 편이다.

그래서 경복궁에 매력이 있다. 자주 드나들게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나와 경복궁의 마음이 같은 바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09.12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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