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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옥문화원 신영훈 원장(전 문화재 전문위원)은 “우리의 집은 서양의 홈이나 하우스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말했다. 홈이나 하우스가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인데 비해 집은 ‘삶의 터’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계집이라는 말이 제집(자신의 집·스스로 집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나왔다거나 자궁을 아기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삶을 담는 그릇인 집. 한국인의 수천년 주거 문화는 개항 이후 심각한 변화를 겪는다. 전통 주거가 사라진 자리에 서양식 주택이 빠른 속도로 들어섰다. 최근 100여년은 가히 ‘잃어버린 한 세기’라고 부를 만하다.

이 땅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집(양옥)은 1884년 완공된 세창양행 사택이다. 이후 1900년대 초부터 일본인 거주지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일본식 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주택영단은 영단주택으로 불리는 집을 대량으로 공급했다. 집 짓는 재료는 전통의 흙과 나무에서 ‘근대적인’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변해갔다.

살기 위해 짓는 집은 점점 없어지고 남에게 팔기 위해 지은 집만 늘어갔다.

20세기 한국의 최대 히트상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아파트는 집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집은 사용가치에 투자가치가 덧붙여지면서 사는 곳에서 돈 버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아파트가 처음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최초의 아파트 단지로 꼽히는 서울 마포아파트(1962년 완공)는 입주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미달 사태를 겪었다. 마당도 없이 높은 층에 사는 삶이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파트가 편리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면서 1999년 국내 주거 형태에서 아파트가 단독주택을 처음 제쳤다.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남의 머리를 발로 딛거나 남을 머리에 이고 살고 있다.

우리 집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건축사(史) 상의 문제가 아니다. 한옥에선 방이 좁으면 대청으로, 마당으로 손님을 모셨다. 아파트에선 바깥의 식당으로 나가야 한다. 된장이나 김치도 담을 수 없고 제사상이나 병풍을 보관할 공간도 마땅찮다. 이사하면서 세간을 자꾸 버리게 된다. 집이 품고 있던 문화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신 원장은 “국내 건축학과에 한옥을 정식으로 가르치는 곳조차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과연 우리는 집을 잃은 민족이 되자는 것인가.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기사입력 2004-04-22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7-1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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