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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따라 다양한 모양 한옥의 '표정' 연출
• 덧문,띄살무늬로 치밀하게 조립
• 미닫이,간격드문 모양으로 밝게
• 방 어둡게할땐 안쪽 맹장지 사용
• 일반 살림집 아자무늬 많이 보급
• 서역-이슬람사원도 무늬 비슷
• 일,우리와 반대로 창살 바깥쪽에 창호지 도배
  
가을이다. 창호지를 새로 바를 때다. 며칠 전 노는 날을 잡아 어린 손자를 데리고 창호지를 발랐다. 아이가 어찌나 재미있어 하는지 하루종일 즐겁게 지냈다.

처음이어서 아이에겐 모두가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저도 거든다고 고사리 손으로 이것저것 집어주고 참견하며 깔깔거리고 어린 애가 더 바빴다. 모처럼 손자와 할아버지의 협동이었다.

물을 뿌려 창호지를 적시고 흠씬 불렸다가 한쪽을 뜯고 살살 잡아당겨 묵은 종이를 떼어내는 일이 시작되었다. 다른 창에 물 뿌리던 녀석이 얼른 덤벼들며 제가 해보겠다고 나선다.

대번에 종이가 찢어졌다. 할아버지처럼 되지 않는 것이 이상스러웠나 보다. 몇번 다시 해보더니 슬며시 할아버지에게 넘겨주고 만다.

세상엔 어려운 일도 있다 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는가를 자세히 살폈다. 흉내 내다가 잘 되지 않으면 난감한 표정이다. 아이 얼굴에서 장난기가 가셨다.

그날 나는 여러가지를 생각했다. 창호지는 안팎이 있다. 거친 쪽과 반들거리는 면이 안팎을 이룬다. 반들거리는 면에 풀칠을 해서 창살에 바른다.

젖었던 종이가 햇볕에 말라 탱탱해지면 창호지 바르는 일은 끝이 나지만 문풍지를 가지런히 해야 한다든지 손잡이를 매만져서 쓸모있게 하는 일이 이어진다. 곰살궂고 재치있는 사람은 단풍잎이던가, 눌러 두었던 나무잎을 넣고 싸발라 모양을 아름답게 하기도 한다.

일이 끝날 즈음, 우리 아이는 손으로 창호지를 튀길 때 나는 소리에 재미가 들었나 보다. 한참 소리를 내더니 무슨 생각에서인지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본다. 그러더니 볼을 살며시 대고 비빈다.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한옥을 지을 때였다. 그 때도 서양 꼬마녀석이 한지에 볼을 비비며 즐거워했었다. 처음 보는 한지가 서양 종이 보다 월등히 다정스러웠나 보다. 그 광경을 본 한국인들은 슬며시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한지는 만든 사람들 심성 만큼이나 질박하고 덕성스러워서 저절로 매만져 보거나 쓰다듬거나 비벼 보고 싶어진다. 그런 우리들만의 공감을 긍정하는 미소다.

우리는 창호지를 창살이 밖으로 향하게 안쪽에 바른다. 일본은 우리와 반대다. 창살이 안으로 보이게 창호지를 밖으로 도배한다.

창호지는 살대에 의지해서 바른다. 우리 살림집 자형 미닫이는 창살이 드물어서 종이 바른 공간이 넓다. 살이 차지하는 면적이 좁아 방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그만큼 넉넉하게 받아들인다.

재주있는 소목(문-창을 만드는 목수)은 여러가지로 아름다운 무늬를 베풀면서 창살을 만든다. 창살 모양은 아주 다양하다. 장식없는 한옥에 변화를 준다. 어떤 집에서는 사랑채에만 십여 종류의 창살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창호지 바른 미닫이, 얇은 깁을 바른 사창(지금의 방충망과 같은)이나 맹장지(앞뒤로 싸바른 창), 그리고 창살이 치밀하게 조립된 덧문만 해도 벌써 창살이 여러가지이다. 이들은 한 자리에 여러겹으로 설치되는 것들인데 쓰임에 따라 제각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누가 오시는구나 반가워 얼른 좌우로 밀어 여는 창이 미닫이다. 머름대 위에 설치되어 있다. 얇은 창호지를 발라서 밝고 명랑하다. 달빛이 밝으면 마당에 핀 꽃으로 해서 우련하게 붉어지는 창이다.

얇은 갑사 같은 천으로 바른 것이 사창이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서 방안에서 잠든 아기의 땀을 들여준다. 날아드는 벌레도 막아 주어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해준다.

대낮에도 방안을 어둡게 해야할 필요가 있을 때 쓸 수 있는 것이 미닫이 안쪽에 설치한 맹장지이다. 갑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두껍닫이를 닮았다. 안팎을 두껍게 싸바른다. 맹장지는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가 좌우로 열린다. 그것이나 미닫이, 사창이 들어가 좌우에 자리잡았을 때 거푸집 처럼 만들어 설치한 것이 두껍닫이다.

이들은 창살의 무늬가 서로 다르다. 기능에 따른 차이이기도 하다. 이는 미닫이의 살대들이 멋을 부리며 변화하는 자태와는 다르다. 멋 부린 창살이 대표적인 표정을 지닌다. 그것의 변화에 따라 집은 다양성을 갖게된다.

창살에는 아자무늬가 있다. 보편적인 것이어서 백성들 살림집에 흔하게 보급되어 있다. 같은 무늬이면서 격조를 높인 구성도 있다. 왕실의 침전(왕이나 왕비, 일가족의 침실-거실들)등에서 볼 수 있다.

손오공이 놀았다는 화염동. 그 서성에 갔다가 한 고장에서 우리와 거의 같은 창살의 창을 단 집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무나 흡사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유형의 창살을 꾸민 이슬람사원도 있었다. 그런 창살무늬가 이 지역에 보편적으로 보급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덧창에서는 띠살무늬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같은 계열의 띠살무늬창도 역시 그 고장에 있었다.

띠살무늬는 아래 위로 긴 살대를 10~13개 세워 꽂는다. 장살이라 부른다. 그 장살의 위와 아래 그리고 중심부에 3-5-3 또는 5-7-5의 수로 짧은 살대를 가로 지른다. 동살이라 하는데 이렇게 조성된 치밀한 무늬로 덧창을 만들면 외기를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처럼 고급 띠살무늬창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긴 해도 서역에 그런 무늬의 창이 있다는 점은 사뭇 주목 거리다. 전에 유구에 가서 본 상왕의 초상화에 묘사된 띠살무늬 창을 기억하고 있어서 띠살무늬의 분포도 만만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완성된 창을 제자리에 달았다. 손자는 대견한 듯이 여러번 여닫아본다. 열면 밖이 내다보이나 닫으면 만사를 가린다. 프랑스에서 한옥을 완성했을 때 프랑스의 한 건축가가 왜 서양식으로 유리창을 끼우지 한지로 바르느냐고 사뭇 의아해했다. 자면서 눈을 감는 이치를 아느냐 고 물었더니 그의 숨이 가빠진다. 양심을 하려면 보지 않고 넘길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늘 유리창 너머로 내다볼 것이 아니라 닫고 보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하느니라 하였더니 수긍이 가는지 고개는 끄덕거리지만 승복하는 눈치는 아니다. 아마 이해하기 어려웠나 보다.

무서운 추위가 휘몰아 치는 날, 유리창에 손을 대면 엉킨 성애와 함께 성큼 전달되는 냉기가 손끝을 달라붙게 하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얼른 손을 피하게 된다. 창호지는 그렇게 지독한 추위는 전달되지 않는다 고 했더니 그것도 쉽게 알아듣지 못하겠나 보다. 경험과 겪지 못한 일 사이의 차이가 이 정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살의 살이란 무슨 의미를 지닌 단어냐 고 그에게 물었다. 한참 망설이더니 어물거린다. 대답하기 어렵다는 뜻인가 보다.

창에다 살을 박는 것이 창살인데 우리는 내외로 두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 하나는 근간이니 우산에 살대가 있어야 구성되는 것처럼 그런 살 이고 또하나는 핵심이어서 인성 개발에 중요한 것인데 떡에다 살을 박아 먹는 일이 그에 해당한다 고 하였더니 눈만 끔벅거린다. 통역하는 이가 잘 전달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한옥이 범연하지 않은 건축이라는 점에는 그도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일종의 경이이기도 한데 한지로 내부를 말끔하게 도배한 뒤에 그것이 포장미술이라면 으뜸으로 손꼽을 만하다는 찬탄도 아끼지 않는다. 창호지를 손자와 바르던 즐거움 속에서도 창호지에 담긴 지혜와 기품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느냐는 방법을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10.10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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