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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일본속의 한민족사탐방 성료 87년 시작 10회동안 5천8백여명 참가
• "문물수용후 더 정교화 일자세 본받아야"
  
일본 나라현 법륭사 중문 앞에서는 문화재 전문위원인 신영훈씨(59)의 강연이 시작됐다.

"중문과 금당, 오중탑, 회랑 등 법륭사의 주요건물에 보이는 배흘림기둥은 백제나 고구려 등 우리나라 계통의 건물에 나타납니다. 또 지붕밑 처마의 모습이 둥근 연목인 것도 일본의 네모난 각목과는 구별되는 한국적 특성입니다. 더욱이 건물의 기둥머리에 얹는 주두도 주두굽 아래 굽받침이 매우 발달한 고구려식이어서 법륭사가 고구려계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지요. "

교재를 들여다보면서 강의내용을 메모하는 사람들은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신한은행이 협찬한 제10회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단원들. 담징벽화 모조품 감탄

강의가 끝나자 이들은 회랑 왼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금당, 오중탑 등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탐방단원들은 금당안에서 담징이 그린 벽화 모조품을 보고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대보장전 한구석에 다른 불상들과 함께 놓여있는 백제관음상을 보고는 품격에 맞는 대접을 하지 못하는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전국 초-중-고교의 역사-사회 교사 4백명과 일반인 2백36명, 운영요원 등 총 6백83명의 탐방단원이 연방여행사의 안내로 전용선을 타고 부산항을 출발한 것은 1일 오후 6시. 이들은 규슈(구주)를 비롯해서 교토(경도), 나라(내량), 아스카(비조) 등의 한국관련 고대사 유적지를 돌아보고 7일 오후 귀국했다.

탐방단원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규슈의 다자이후(대재부)와 후나야마(선산)고분. 서기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패한후 백제를 구원하려다 실패한 왜열도의 백제계 지배층은 신라의 침입에 대비해 규슈의 내륙지방에 다자이후를 설치하고 그 외곽에 수성을 쌓는다. 전방후원분인 후나야마 고분은 금동제 관모와 신발, 귀고리 등 출토유물이 백제-가야의 유물과 너무도 흡사해 일본 고대문화 형성기에 한반도가 끼친 영향을 잘 보여준다.

규슈지역 탐방을 마친 단원들은 일본내해를 거쳐 고베(신호)에 상륙해 나라의 동대사를 찾았다.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과 금동대불로 유명한 동대사는 백제-신라계 이주민들의 창건과 후원에 의해 만들어진 사찰. 몇차례의 화재와 중창으로 지금의 동대사는 창건 당시의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팔번궁앞의 고구려식 부경과 창건주를 모신 신국신사(원래는 한국신사)등에서 옛 흔적을 찾아볼수 있다. 이어 방문한 곳이 교토의 광륭사와 나라현의 법륭사로 광륭사의 적송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일본 국보 1호)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금동제 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83호)을 빼닮았다.

탐방단원들은 계속해서 고대한국의 영향이 가장 짙게 배어있는 아스카지방으로 차를 몰아 다카마쓰총(고송총)과 석무대고분, 아스카자료관 등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다카마쓰총 석실의 사신도, 인물도, 성수도등 채색벽화는 고구려 벽화고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으며 거대한 화강암 더미인 석무대는 백제계 이주민으로 7세기 왜열도의 정치를 좌우한 소아씨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상-현장강의 도움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은 전문가들이 선상과 현장강의를 통해 참가자들의 이해를 도와준다는 것이 특징. 이번 탐방 역시 김병모한양대교수(고고학회 회장), 신영훈-서희건문화재전문위원, 윤명철성균관대강사 등이 줄곧 자리를 함께 하며 가는 곳마다 탐방단원들을 인도했다.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은 지난 87년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조선일보가 기획, 일반인들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제2회부터 신한은행(회장 이희건)의 협찬으로 전국 초-중-고 선생님들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우리 조상의 찬란했던 활동을 살펴봄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재도약을 위한 정신적 자세를 다진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탐방은 88년과 89년에는 두차례씩 탐방을 가짐으로써 8년만에 10회를 기록했다. 한민족사 탐방에는 올해까지 교사 3천3백30명과 일반인 2천5백36명 등 총 5천8백66명이 참여했으며 조선일보와 신한은행은 전국의 모든 초-중-고에서 한명씩 교사가 참여할 때까지 탐방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탐방단원들은 한국인이 일본 고대국가 형성에 미친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컸던데 대해 감명을 토로했다.

경기도 김포군 개곡국교 박상길교사(41)는 "일본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되는 서기 670년 이전에는 한반도와 왜열도가 하나의 역사단위였다는 강연에 충격을 받고 가는 곳마다 그 자취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백제영향 생각보다 커

서울 혜성여고 황주난교사(37 사회)는 " 백제인이 일본에 영향을 미쳤다 는 다소 막연했던 지식이 탐방을 통해 구체화된 것은 큰 소득"이라며 "이번 현장경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탐방단원들은 또한 일본에 문물을 전해준 우리가 지금은 오히려 뒤떨어져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서울 동도중 최성훈교사(38.역사)는 "앞선 문물을 받아들여 이를 더욱 발전시킨 일본의 자세는 본받아야 하며 우리가 다시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스카(비조)=이선민기자>

                                                                                발행일 : 1994.12.11 기고자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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