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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인들 "이상향 가는길" 층계마다 연꽃무늬
• 불국사 버선코모양 소맷돌
• 직선-곡선 절묘한 조화이뤄
• 중국 자금성 에도 양각무늬 통행보다 위엄의 장소 상징
• "노력쌓아야 극락행" 교훈

중국 자금성에도 양각무늬 통행보다 위엄의 장소 상징

사다리를 성벽에 걸치고 뛰어 올라가 공격하는 용감한 장면을 청소년 수련장에서 재현시킬 수 있겠느냐는 주문이 있었다.

화살과 돌(시석)이 빗발 치는 사이를 뚫고 높은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려면 우선 사다리가 가벼워야 한다. 화랑과 낭도들이 쓰던 가벼운 사다리란 어떤 것일까. 쉽게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는 나무 장대로 사다리를 만들어도 새끼나 칡으로 엮으면 상당히 무거워진다. 못을 박아도 마찬가지. 또 위태롭기도 하다. 미국 뉴멕시코주의 토착인 마을에 갔다. 무심히 구경하다 그만 무릎을 치면서 놀랐다. 수레가 한 틀 있었다. 목재 여러 부분을 결색하면서 쇠심줄을 썼다. 옳다. 높은 사다리를 엮는데 쇠심줄이면 안성맞춤이다.

어려서 보았었다. 아직 꾸덕한 쇠심줄을 한껏 잡아당기며 목재에 챙챙 감는다. 쇠심줄이 마르면서 옥죄면 살갗을 파고 들면서 고정되어 끄떡 없게 되고 만다.

아뿔싸 . 왜 그 생각 못했을고.

수백만원 여비를 쓰고야 겨우 깨닫다니, 요 아둔한 머리를 몇번이고 쥐어 박았다. 그 아둔한 눈에도 띄는 신비가 있어 나는 마냥 즐겁다. 또 불국사 이야기이다. 거기서 맛본 감격의 한토막.

자하문 밖에는 청운 백운교가 있다. 또 안양문 앞에는 연화 칠보교가 있다. 이들은 이쪽에서 저편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든 층층다리이다. 사바세계에서 이상향을 향하여 올라가는 층층다리로 신라인들은 설정하였다.

그중의 연화교는 극락의 세계로 올라서는 어구에 있다. 층층다리의 발딛는 자리 마다에 연꽃을 상징하는 무늬를 새겼다. 걸음마다 연꽃 밟고 올라가라는 배려이다.

김소월의 시에서는 아름 따다 뿌린 진달래가 발 아래 깔렸다. 그것조차도 밟고 매몰차게 떠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상정이라면 극락행 층층다리의 연꽃 밟는 마음이야 오죽하였으랴 싶다. 마음이 청정한 분은 그야말로 한걸음마다 절을 한번씩 하는 일보일례의 돈독한 환희를 맛보았을 것이다.

북경 자금성 중요 전각들의 돌층계도 멋지게 장엄하였다. 중앙에 대단한 무늬를 넓게 양각하여 설치한 판 좌우로 좁은 돌층계가 있고 거기에 장중한 무늬가 베풀어져 있다. 그러나 이 돌층계는 사람이 다닐 수 없게 되어 있다. 권위가 자리잡고 있는 위엄의 장소일 뿐이다.

자금성의 층계 중에는 딛는 발판이 없이 그냥 경사지게 만든 답도형 구조물이 있다. 임금님이 연을 타고 거동하면 그대로 메고 왕래할만 하다. 현대적인 발달된 구조나 별차이가 없다.

2차대전 종말로 광복 50년을 맞은 나라가 동서양에 여럿이 있다. 지나치게 빨리 발전하여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나라도 있다. 전철을 밟지 말자는 각성의 소리가 우리를 일깨운다.

층계 없이 과속으로 올라서는 것 보다 한발자국 마다 감사하는 환희를 품고 백성들의 한결 같은 마음을 든든히 딛고 올라서는 것이 합당하다는 소리이다.

불국사 돌층층다리는 그런 노력이 업적이 되어 축적되었을 때 바로 이상향으로 진입하는 즐거움이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선대가 우리에게 남겨준 고마운 교훈이다.

유교 덕목이 쇠미해지고 사회규범의 혼돈이 야기된 오늘의 세태일지라도 그래도 어떻게든 기준을 세워야 한다면 여러가지 방책이 있을 것이다. 그중의 하나는 민족의 긍지를 고양하는 길이다. 선대가 남긴 지혜와 기막힌 정성에 공감하면서 자긍을 느낄 수만 있다면 저절로 민족적인 긍지가 태동하는 터전이 마련된다. 긍지가 생기면 함부로 굴 수 없는 처지가 되며 체면 깎일 일을 삼가게 된다. 차분해지면서 고매한 인격도야에 합심하게 된다면 우리는 광복 50년을 보내며 큰 성과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대가 남긴 놀라운 재치의 한가닥이 불국사에 또 있다. 대웅전 댓돌 정면에 가파른 돌층계가 있고 좌우로 직삼각형의 소맷돌이 서 있다. 신라 때의 작품이다.

소맷돌 좌우 표면에 직삼각형 윤곽에 맞추어 실금을 그어 장식하였다. 당연히 직삼각형의 뾰족한 꼭지를 날카롭게 표현했어야 할 터인데 앞의 부리 쪽을 살짝 궁글리어 여인들 버선 코 모양 다정하게 능쳤다. 직선의 경직성이 그만 해체 되면서 아름다움을 머금고 말았다.

이런 이야기를 외국에서 할 때는 잠시 말을 멈춘다. 필름을 환등기에 비추면 이 소맷돌이 화면에 그대로 서있다. 청중석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온다.

도시 초현대 고층건축물에 다시 곡선이 채택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직선만의 기능 위주 건물들이 지나치게 경직되었다는 반성에서 배태된 탄력이 곡선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이런 곡선의 묘사는 차라리 놀라움이 된다.

소맷돌 장식을 교묘하게 응용한 예도 있다. 조선왕조 종묘 정전, 임금님이 제사 드리러 올라서는 돌층층다리의 소맷돌 끝에 구름을 한가닥 새겼다.

한발자국 올라서면 구름 위가 되면서 거대한 정전이 하늘나라의 운상각이 된다. 기막힌 조화 속이다.

다른 예도 있다. 송광사 일주문 앞 소맷돌에 생각 속에 잠긴 돌사자상 이 그중의 하나가 된다.

우리는 고마운 어제를 살아왔다. 놀라운 지혜와 정성과 재치와 환희를 찾을수록 새록새록 하며 깊게 파고 들수록 진한 감동을 함축하고 있다. 오늘의 이 마음이 내일에 이어지면 우리는 어디에 가서도 자랑을 일삼을 수 있을 것이다. 광복 50돌을 보내는 올해. 우리는 신바람 나는 내일을 바라다 보고 있다. <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08.22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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