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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국내성에 대한 중국학자의 서술이다.
<고구려 국내성은 425년 동안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평양에 도읍을 옮긴 후에도 여전히 중요한 도시였으나 고구려가 멸망한 뒤로는 점차 쇠락하였다.
현재 중국경내에 위치한 국내성에서 출토한 문물로 볼 때 근로勤勞하고 지혜로운 고구려 인민들은 달리보기 어려운 보배롭고 진귀한 물질문화와 정신적인 재부財富를 남겼다. 예컨데 웅위한 산성, 기세가 비범한 거대한 석분石墳, 신기하고 거대한 비석, 풍격이 다양한 벽화와 각기 특색 있는 공예품들은 모두 동북지구의 고대문명에 이채를 더하여 주는 존재들이다.
  고구려 민족의 문화를 보여주는 문물은 내용이 아주 풍부하다. 우리는 문헌의 기록과 남아 있는 문화유적의 두 방면을 통하여 이 고대민족의 중요한 특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이론은 한민족과 고구려족의 문화의 바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한족들의 문화바탕에서 볼 수 없는 산성과, 고분과 거대한 비석등을 예로 들고 있지만 그 외에도 살림집이 서로 다른 모양이고 집집의 곳간 또한 같지 않아 고구려의 부경(귀틀로 조성한 다리 달린 곳간의 일종)을 설명할 도리가 없자 자기네 '감옥'과 유사하다고 궁색한 표현을 한다. 한족들의 집에는 귀틀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중국의 황토고원에는 황토벼랑을 파고들어 가며 지은 '야웃둥'이라는  도혈陶穴 의 굴집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집 보기가 어렵다. 이 굴집이 분포된 한 지역 서안西安 일대에서 고구려계의 구들을 드리고 살고 있는 광경을 한 10년전에 본 적이 있다. 이런 점에서 고구려문화의 대륙진출에 관한 탐구도 활발히 진행할 필요가 생긴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식견을 재정리 하는 방법도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이제 우리도 일본학자들의 견해나 중국학자들의 생각을 들으며 그들의 견해를 뒤따를 것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를 해야할 시기에 이르러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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