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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갈 길이 멀어서 요즈음 브지런을 떨고 있다. <고구려인의 삶과 문화>라는 글을 끝맺고 출판사에 넘겨주어 곧 책이 나올 단계에 있다. 책이 나온 이후로도 이 이야기가 계속되면 책광고 한다는 오해를 받을 염려가 있어 어서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는 생각이다. 다시 중국학자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2) 고구려 중기의 건축
집안시의 동쪽 500m쯤에 '동대자東대子'라는 곳에 중요한 고구려 건축의 터가 있는데 이는 고구려 제왕궁실帝王宮室이 사직社稷에 제사 지내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물 터전(발굴 조사한 바 있다) 중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부분에 회랑으로 서로 연결된 정실正室과 편방偏房등 네 채의 건물 터전이 있다.
정실의 동쪽 방이 제일 잘 보존되어 있는데 평면은 장방형으로 동서의 길이 15m, 남북 너비 11m이다. 실내 중앙에는 장방형의 석좌石座가 세워져 있는데 길이는 0.8m, 너비는 0.6m, 높이 1m이다.
정실의 서편방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평면은 장방형에 가까운데 동서의 길이는 15m, 남북의 너비는 14m이다. 기초는 둥근 알 처럼 생긴 큰자갈과 황토로 밑을 채우고 다부지게 다졌으며 그 위로 초석을 배열하였는데 아주 정연하고 질서가 있다.
회랑의 초석도 네모난 초반礎盤에 둥근 주좌柱座를 만들었고 주초석 아래에는 자갈로 받침을 하였다.
동실東室은 지모地母를 봉양하는 사직 중의 社단이고 동실 중앙의 거대한 돌은 사단의 신주였을 것이다.
고국양왕 9년(392) 춘삼월에 왕실과 사직과 종묘를 수리하였는데 바로 이 건물터가 그 시기에 경영된 사직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고구려 중기에 해당한다.
동실東室과 서옥西屋 실내에는 난방시설이 있다. 동실은 너비 0.7m의 연도烟道만 있을 뿐이어서 사람이 살기엔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모종의 제사의식을 거행하던 곳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옥은 너비가 2m 되는 온돌이 있고 거기에 회토灰土가 아주 두껍게 쌓여 있었는데 이는 분명히 불을 많이 때었음을 말해준다.
온돌과 아궁이 부근에서 돌절구, 흙으로 빚어 구어 만든 방륜紡輪과 구멍이 있는 다리 넷이 달린 질그릇 등의 살림살이들이 발견되었다. 때문에 이는 사람 살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삼국지三國志> 30권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에 근거하면 "그 풍속에 --- 사는 집 좌우에 큰 집을 짓고 귀신에게 제를 지내고 영성과 사직에 치성을 드린다"고 하였다. 바로 이 기록에 부합된 모양이라 할 수 있는데 서옥이 사는 집이라면 동실은 바로 제사나 치성을 드리던 장소가 된다.
동대자 건축 터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밝혀진 고구려의 궁실 유적지로 그 배치와 건축구조를 알 수 있게 해준, 우리들에게 제공된 고구려 건축의 실질적인 실상의 자료이다. 동대자 유지와 연대가 비슷한 것이 이수원자梨樹園子 터전인데 그 전체 건축규모 그리고 출토한 문물로 보아 고구려의 관아건물, 혹은 왕실, 귀족이 살던 집 자리가 아닌지 추정하게 한다. 규모는 동서의 길이가 약 150m, 남북의 너비가 80m이다. 서편으로 치우쳐 네개의 동서발향으로 배열된 거대한 화강암 초석이 있고 그 연장선상의 지하에도 대량의 초석이 매장되어 있다. 이로써 이 건축은 규모가 상당히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지표면에는 건축에 사용하였던 많은 기와편과 막새기와가  쭉 흩어져 있다.

***집안의 동대자 유적은 값싼 공장 건물이 들어서면서 거의 사라진 상태라는 소식을 집안에서 들었는데 공장 울타리안에 접근을 시키지 않아 어느정도나 훼손되었는지는 확인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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