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런던통신 2

by 신영훈 posted Jul 19, 200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7월 3일

어제는 일요일이어서 박물관에서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원래 토요일에도 쉬라고 하지만 우리 일정이 빠듯하여 양해를 구하고 토요일에 일을 하였으나 일요일에는 쉬기로 약속이 되었습니다. 원래 박물관이란 제약이 많은 곳이므로 규칙에 따라주는 것이 도리이지요.

월요일 오늘, 벌써 도리를 걸기 시작하였답니다. 박물관의 건축가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관찰을 하는데 우선 놀라는 일이 이렇게 많은 나무가 저 집에 다 사용되느냐의 의문입니다. 작은 규모의 집에 비하면 목재가 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짓고 있는 사랑채는 채 8평이 되지 않는 크기이나 앞퇴가 있는 정면 3간 집인데다 2간은 구들 드린 방이고 1 간은 대청이어서 목재의 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더구나 팔작지붕이고, 아무리 실내에 짓는 건물이어도 추녀가 걸리고 선자서까래가 짜이니 제 모습 다 갖춘 격조 있는 제 크기를 지닌 건물입니다.

지름이 30cm나 되는 도리를 보더니 이렇게나 굵은 나무가 올라가는 것은 하부 구조에 비하여 비례가 맞지 않지 않겠느냐고 걱정이 태산 같던 사람들이 막상 올라간 도리를 보고는 그런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갸우뚱거려요. 이상한가 봐요. 아래서 보았을 때 그렇게 호대하게 보이던 것이 막상 제자리에 올라가니 아주 알맞거던요.

"어째서 그럴까?"

"멀면 작게 보인다는 착시 현상이지요"


얼른 알아듣지를 못해요. 인간의 착시현상을 기막히게 활용하는 건축법식이 있다는 소식은 고전의 근원지인 그리스에서나 듣는 소리지 싶었는데 막상 눈앞에서 전개되니 겁이 나는가 봅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되어 가는 작업을 자기가 지켜보고 있었으니 부정하기도 어렵죠. 그러니 엄지손가락 치켜세우고는 "원더풀!"을 연발할 밖에 없습니다.

소나무 말간 색깔이 좀 곱습니까. 소나무 냄새는 어떻구요---. 한국실을 책임진 건축가는 동료들 앞에서 마냥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습니다.

玄岩社에서 영국으로 떠나기 바로 출발 직전에 간행한 <우리 한옥>을 몇 권 갖고 왔다가 그 중의 한 권을 주었더니 그 책을 펼쳐가며 동료와 호기심 많은 견학자들에게 설명하느라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얼굴에선 웃음기가 마를 날이 없군요.

"나도 이제부터 한옥 공부할래요"

이 친구는 아주 착해요. 전에 한국에 와서 한옥을 살피고 다닐 때 김영일 상무가 주관하는 사직동 운경선생 고택수리 현장을 찾아갔었어요. 거기서 우물마루를 보았고 그에 자극되어 한국실 바닥 전면에 우물마루 깔겠다는 의사를 전한 적이 있었어요. 와서 보니 이미 까는 일을 감행하였어요. 우리가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작업을 완료하였더군요. 상당히 멋지게 깔았어요. 원 바닥은 19세기 건물의 시멘트바닥입니다.  

어떨까요. 우리 신축하는 국립박물관에 이런 우물마루를 채택하는 작업이 진행될만 할까요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국립박물관 건물의 성격으로 보아 조금 힘들 것 같다"는 견해를 영국의 한 교포가 말씀하시는군요. 밖에서 보고 느끼는 식견이지요.

우물마루 덕에 김영일 상무는 영국박물관 건축실 건축가들에게 상당한 예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과 웃고 떠드는데 전혀 스스럼이 없어요. 전문가들끼리의 대화라고 김상무는 득의만면입니다. 언제 저렇게 영어를 잘 배웠지--?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저렇게 지을 수 있대--"

기미가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서양건축가들의 교육현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학생들에게, 건축학도들에게 보여줄 그런 건물이 될 것 같다는 기운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영국에 살고 있는 분들도 같은 느낌이랍니다.

우리들이 짓고 있대서가 아니라 집이 되어 가는 모습이 참 예뻐요. 박물관의 기존건물과 아주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내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함께 전송할 수 있는 실력만 있다면 지금 되어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 일이 가능하지 않군요. 귀국해서 따로 자리를 마련할 수밖에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한국실 담당 학예사와 동양부장을 비롯한 학예직 여러분에게는 대원사에서 간행한 김대벽 선생 칠순을 축수하는 <한옥의 고향>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좋은 사진만 봐도 한옥의 분위기를 알 수 있어서인지 역시 매우 좋아하네요.

그러면서도 아쉬워하네요. 영문으로 쓰여진 책이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이지요. 지금 여기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에도 한국어판 안내서가 간행되어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 십명씩 오는 한국인을 위한 배려이죠. 그 책에도 한국실과 우리가 짓고 있는 사랑채가 소개되겠지만 다른 나라 언어의 안내서에도 실릴터인데 그들이 한옥을 공부할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할 때 멋진 안내문이 작성될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서는군요. 당장 쥐어 줄 책이 넉넉지 못하니 말입니다. 우리의 준비부족이 이런 자리에서 다시 드러나는군요.

무슨 좋은 책이 없을까요? 알려주시거나 보내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연락 주실 분은 '한옥문화원'으로 통보해 주시면 됩니다.

오늘 3일에 기와와 도배를 담당할 전문가가 제3진으로 도착하였습니다. 12인의 대식구가 작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내게는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1965년도인가 덴마크 국립박물관 한국실에 '백악산방'이라는 사랑채를 한 채 건립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달랑 나 혼자 가서 목수 일에서 도배하는 일체의 일까지를 혼자 다 해야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력은 그 시절 보다 무려 12배나 신장한 셈입니다. 좋은 세상이 되었다는 즐거운 마음입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벌써 12시가 되었군요. 아침 6시엔 아침 먹고 차를 타고 박물관에 가서 오전 8시부터 작업을 시작 해야합니다. 조금 쉬어야겠네요. 다음에 다시 소식 전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군요. 하루가 빨리도 가지만 굉장히 고단하기도 합니다.

그럼 여러분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