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박물관 이집트실 3.

by 신영훈 posted Dec 15, 200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이집트에 다녀오고 나서 얼마 지난 뒤에 동창생들이 모여서 술 마시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거나하게 취기가 돌자 한 녀석이 큰소리로 물었다. "야아! 이집트의 그 많은 벽화 중에 여인들의 나체상도 있던?" 와하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시선이 집중된다. 나이 먹은 늙은이들의 호기심에 어린 눈동자가 빛난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온 처지들이라 흉허물이 없는 사이이다.

"암 있지! 있고 말고지....."

"어떤 그림인데?"

이번에는 그 중 제일 얌전한 녀석이 물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 , 후에 그림을 보여줄께..."

우리는 이집트에 다녀와서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여 CD에 구워 정리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료로 공급하고 있어서 벽화 검색이 쉬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쉽게 볼 수 있는 사진이 있다. 브리티시박물관에서 펴낸 이집트 설명서에 실린 도판에서도 볼 수 있어 그 사진을 보여주기로 하였다. 그에 앞서 먼저 읽었던 이집트 안내서의 글을 계속해 읽어보기로 하였다.

전에 이집트 가기 전에 혹시 이집트를 소개한 한글로 쓴 책이 없을까 해서 찾아다녀 보았지만 마땅한 것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런 기록이 약간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525년, 페르시아가 정복함으로써 이집트인들에 의한 이집트 지배 시대는 끝나고, 332년 알렉산더 대왕은 이집트를 제국의 일부로 병합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그의 장군이었던 포톨레마이오스가 자신의 왕조를 건립하였다. 새 수도가 북부 해변의 알렉산드리아로 정해지면서, 이집트는 문화적 및 정치적으로 지중해의 그리이스 세계와 점점 더 깊은 관계를 맺게되었다. 그 관계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지배자였던 크레오파트라 7세가 옥타비아에게 패하고 이집트가 로마 제국의 일부로 합병된 기원전 30년 이후 더욱 밀접해졌다.

페르시아, 그리이스, 로마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을 전통적인 이집트국왕으로 처신하였으며, 신전을 지원하고 건설하는 일이 방편 상 유리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집트의 종교와 문화보다는 이집트의 전설적인 부에 훨씬 더 관심이 있었다. 신왕국의 권력이 최고조에 달하였을 때 이집트의 제국은 남으로는 누비아에 있는 제4 나일강의 폭포까지, 북으로는 시리아와 터키의 현재 국경까지 뻗어 있었다.

이집트는 아프리카에서 수입되는 흑단나무, 상아, 금 등과 같은 희귀한 물품 교역 등을 관리한 일 말고도 아마포, 파피루스지, 곡물 등과 같은 인기 상품들을  생산수출 했다. 특히 로마는 커지는 제국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곡물을 필요로 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 이집트에 대한 지식은 무덤과 사자들이 사후생활을 즐기도록 무덤 속에 매장된 부장품에서 기인한다.

남부의 아비도스와 북부의 삭카라 같은 곳에 있는 초기 왕조시대 및 고대왕국시대의 무덤 마스터비는 살고 있는 집을 본떠 축조한 것이다. 고왕국 시대에는 국왕을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돌 피라미드에 매장했다. 그러나 신왕국부터는 테베왕의 계곡에 있는 것처럼 보안을 중시해 지하나 언덕에 매장하는 축조방식을 선호하였다.

왕릉 내부의 조각과 그림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믿던 복잡한 의식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 사실은 이집트 문자가 19세기에 와서야 겨우 해독되기 시작하면서 밝혀졌다.

왕릉의 그림은 자주 이상한 지형이나, 태양신이 밤에 통과한 지하세계의 무시무시한 형상들을 묘사한다. 사후의 영혼은 태양을 따라 지하세계를 통과하고 신 오시리스의 궁전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는 사자의 심장 무게를 달아 그의 정직성을 판결한다. 그 시험에 통과하면, 영혼은 신의 궁전에서 평화로운 사후생활을 하게 된다.

여러 왕조에 걸쳐 일반인들의 무덤에는 일상생활의 생생한 장면들이 조각되고 그림으로 묘사되었다. 이들은 단지 장식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모든 이집트 장례 예술처럼 사자에게 사후생활에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술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관료들이 농사짓는 것을 감시하고 가족 파티를 즐기는 것이 묘사된 신왕조의 그림들은 그들에게 내세에서도 이승의 지위와 기쁨을 그대로 유지하고 즐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외에도 음식, 의류, 화장품, 귀금속, 필기류, 가구 등과 같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무덤에 매장되었다. 가끔 이집트의 건조한 기후로 인해 고스란히 보존된 이들 부장품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에 대하여 중요한 정보를 자세하게 제공해 준다. 특히 모형 배, 동물 및 시종들, 부적 등과 같은 것들은 시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장된 것들이다. 파피루스지 두루말이, 혹은 '死者의 書'는 사자들의 사후의 세계에서 돕기 위한 주문이었다.

무덤이나 신전 외부에 있던 물건들은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여러 곳에서 일상생활에 직접 사용되던 물건들 및 세탁물 리스트에서부터 편지와 문학작품에 이르는 대량의 문서들이 발굴되었다]

이 설명문 아래에 위의 그림이 실려 있고 그 그림에 나체여인이 춤추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어서 호기심 많은 그들에게 보여주기로 하였다.



사진설명

18대 왕조시대 테베의 관료였던 네바문의 무덤에서 출토된 벽화. 신왕국, 기원전 1390년경. 음악가들과 무희들이 있는 장면을 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