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三井寺를 찾아 갔었고 일요일에는 石山寺에 갔었다.
우리 선조들이 도읍을 정하였던 오미近江에 있는 유명한 두 절이고, 국보로 지정된 목조건축물이 있어 관심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석산사의 다보탑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류의 목탑 중에서 나이가 많은 遺構에 속한다고 한다.
이럭저럭 점을 찍어나가 보니 일본 국보건조물을 그런대로 한 30점을 넘겼으나 아직 50점에 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수준이다. 주변의 많은 건물들은 그 수량을 다 점고하기도 힘들겠다.
새벽에 일찍 나서서 석산사를 보고는 얼른 교토로 가서 南禪寺로 갔다. 여기도 국보 건물이 두 채나 있다. 그 중의 요사채는 규모가 대단하여 그것만 보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으나 머뭇거리지 않고 큰절 주변의 산내 암자들을 얼른 보고는 銀閣寺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개울을 끼고 걷는 오솔길이다. 어구에 <哲學の道>라는 표말이 섰다.1900년대 초엽부터 사색이 깊은 분들이 이 길을 거닐며 많은 사색을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 한다.
조금 가니 개울가의 길이 단단히 손질이 되었다. 걷기에 편의하도록 가꾸어 놓았다. 옆의 표지판에 철학의 길을 보존하는 모임에서 가꾸고 있다는 설명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꽤 이름이 났나 보다 서양사람들 쌍쌍이가 다정하게 걷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마주친다. 그들은 사색에 잠기기 보다는 구경꾼으로 희희낙락이다. 사진 찍기에 열중한 사람도 흔하다. 거의 길을 가득 메운 인파가 그 길을 가고 있다. 옆의 마련된 의자에 앉아 사람구경을 즐겼다. 어짜피 나는 오늘도 아무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조금 시무룩하게 앉아 있으면 남들은 사색에 잠겨 저러고 있으려니 할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나가던 파란 눈의 아가씨가 나를 모델로 삼고 사진을 찍고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포즈를 취하려야 그럴듯 하려는지를 미리 생각해 두지 못해서 바라다 보면서 씩 웃고 말았다.
연안 박지원 선생이 청나라에 갔다가 겪을 이야기를 쓴 책이 다 아다시피 熱河日記이다. 어느날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젊은 여인을 본적이 있었다. 연암선생 생각대로 그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당사자의 생각을 알리 없으니 주관적인 묘사가 고작일 수 밖에 없었는데 아마 저 파아란 눈의 아가씨도 그런 주관적인 관점에 빠져 있을 것이다. 벌써 석장이나 사진을 찍고 있다.
熱河日記에 묘사된 열하라는 청나라 別都를 전에 가본적이 있었다. 좋은 자료를 이번 공부에서 얻을 수 있었다. 이 자료와 연암선생의 일기와 김대벽선생의 사진을 곁드리면 우리의 회보인 <한옥문화> 한 권이 훌륭하게 완성될것 같아 자료정리를 단단히 하고 있다.
누가 또 사진을 찍는 기미여서 얼른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서둘러야겠다. 벌써 오후 6시에 가까우니 은각사에 들어가긴 다 틀렸지만 길 도중에 있는 여러 유적들을 겉으로라도 확인해 두고 싶다. 그래야 다음 왔을 때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이날도 점심은 걸렀고 저녁은 10시나 다 되어서야 먹을 수 있었다. 사람이 혼자라는 것이 정상일 수 없다는 경험을 이번에 단단히 하고 있다. 역시 어부려져 살게 마련이다.
철학의 길을 걸어서였을까, 그날 밤에는 좀처럼 꾸지 않은 꿈을 꾸었는데 어느 늙수루레한 江戶시대 학자 한분과 낭자하게 수작을 나누었다. 낮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꿈속에서 실컷한 셈이 되어서인지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심신이 매우 가벼워 일찍 연구소에 나가 熱河의 자료를 다시 챙기었다.
우리 선조들이 도읍을 정하였던 오미近江에 있는 유명한 두 절이고, 국보로 지정된 목조건축물이 있어 관심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석산사의 다보탑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류의 목탑 중에서 나이가 많은 遺構에 속한다고 한다.
이럭저럭 점을 찍어나가 보니 일본 국보건조물을 그런대로 한 30점을 넘겼으나 아직 50점에 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수준이다. 주변의 많은 건물들은 그 수량을 다 점고하기도 힘들겠다.
새벽에 일찍 나서서 석산사를 보고는 얼른 교토로 가서 南禪寺로 갔다. 여기도 국보 건물이 두 채나 있다. 그 중의 요사채는 규모가 대단하여 그것만 보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으나 머뭇거리지 않고 큰절 주변의 산내 암자들을 얼른 보고는 銀閣寺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개울을 끼고 걷는 오솔길이다. 어구에 <哲學の道>라는 표말이 섰다.1900년대 초엽부터 사색이 깊은 분들이 이 길을 거닐며 많은 사색을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 한다.
조금 가니 개울가의 길이 단단히 손질이 되었다. 걷기에 편의하도록 가꾸어 놓았다. 옆의 표지판에 철학의 길을 보존하는 모임에서 가꾸고 있다는 설명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꽤 이름이 났나 보다 서양사람들 쌍쌍이가 다정하게 걷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마주친다. 그들은 사색에 잠기기 보다는 구경꾼으로 희희낙락이다. 사진 찍기에 열중한 사람도 흔하다. 거의 길을 가득 메운 인파가 그 길을 가고 있다. 옆의 마련된 의자에 앉아 사람구경을 즐겼다. 어짜피 나는 오늘도 아무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조금 시무룩하게 앉아 있으면 남들은 사색에 잠겨 저러고 있으려니 할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나가던 파란 눈의 아가씨가 나를 모델로 삼고 사진을 찍고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포즈를 취하려야 그럴듯 하려는지를 미리 생각해 두지 못해서 바라다 보면서 씩 웃고 말았다.
연안 박지원 선생이 청나라에 갔다가 겪을 이야기를 쓴 책이 다 아다시피 熱河日記이다. 어느날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젊은 여인을 본적이 있었다. 연암선생 생각대로 그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당사자의 생각을 알리 없으니 주관적인 묘사가 고작일 수 밖에 없었는데 아마 저 파아란 눈의 아가씨도 그런 주관적인 관점에 빠져 있을 것이다. 벌써 석장이나 사진을 찍고 있다.
熱河日記에 묘사된 열하라는 청나라 別都를 전에 가본적이 있었다. 좋은 자료를 이번 공부에서 얻을 수 있었다. 이 자료와 연암선생의 일기와 김대벽선생의 사진을 곁드리면 우리의 회보인 <한옥문화> 한 권이 훌륭하게 완성될것 같아 자료정리를 단단히 하고 있다.
누가 또 사진을 찍는 기미여서 얼른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서둘러야겠다. 벌써 오후 6시에 가까우니 은각사에 들어가긴 다 틀렸지만 길 도중에 있는 여러 유적들을 겉으로라도 확인해 두고 싶다. 그래야 다음 왔을 때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이날도 점심은 걸렀고 저녁은 10시나 다 되어서야 먹을 수 있었다. 사람이 혼자라는 것이 정상일 수 없다는 경험을 이번에 단단히 하고 있다. 역시 어부려져 살게 마련이다.
철학의 길을 걸어서였을까, 그날 밤에는 좀처럼 꾸지 않은 꿈을 꾸었는데 어느 늙수루레한 江戶시대 학자 한분과 낭자하게 수작을 나누었다. 낮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꿈속에서 실컷한 셈이 되어서인지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심신이 매우 가벼워 일찍 연구소에 나가 熱河의 자료를 다시 챙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