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상단 --추정해본 장군총의 전체모습
우측상단 --목조건축의 모습
좌측하단 --장군총의 평면도, 상단에 난간자리가 보임
우측하단 --현존하는 장군총의 모습
** 고구려 방단건축의 표본인 장군총의 원형탐구를 위한 노력으로 유문룡선생의 실측도와 목조건축을 재현시켜 본 도면을 실어 두고 여러분들의 참여로 무언가 더 성숙되는 단계를 거치고 싶었으나 별다른 관심을 표명하는 분이 아니계셔서 부끄러운 마음에 이 도면을 접어 두었다가 다음 기회에 올리는 것이 합당할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료가 필요한 분은 한옥문화원으로 문의하기를 바라고 있다.
<佛國寺> 책이 서점에 나가자 지금은 <고구려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서 여러가지 자료들을 정리하는 중에 압록강유역 집안(집의 안쪽이란 우리말의 지명인듯 하다. 국내성의 국내가 나라 안이라는 의미나 마찬가지로 생각되니 중국인들이 한자로 集安이라 하던 輯安이라 표기하던 우리는 상관이 없다. '집안'이면 족하기 때문이다.)에 가서 머물 때 유문룡이라는 명인을 모셔다가 장군총을 실측하였던 기록도 다시 살피게 되었다.
그 방단건축은 상단에 난간 세웠던 홈이 파져 있음은 이미 전에 말한 바 있다. 난간을 설치하였다면 당연히 여기 상단에 건축물이 있어야 한다. 건물이 없고서야 난간을 두를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석축의 돌틈에서 기와장들이 나온다는 사실도 이야기 하였고 다시 제자리에 넣고 내려왔다는 점도 알려드렸다.
그렇다는 것은 여기 건축물이 기와를 이은 건물이라는 의미인데 기와를 이었다면 당연히 목조건축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 목조건축은 어떤 모양일까가 우리들의 고심이었다. 우리에게 현존하는 그 계열의 건축물이 없어 참고하기 어렵다는데 까닭이 있었다. 그런 중에 뛰어난 목조건축 조영의 실무와 학술적인 지식이 난숙한, 또한 능력이 탁월한 우리의 유문룡선생이 그 목조건축을 탐구하여 드디어 그 모양을 도면에 그려내었다. 조선일보사가 발행하는 마음으로 보는 우리문화의 네번째 책으로 기획하고 있는 <고구려 사람들의 삶과 문화>의 편집자들의 끈질긴 노력의 덕분이다.
유문룡선생은 아직 완벽하다고는 말하기 힘든 지경의 작품일 뿐이라 하지만 이런 발상과 그려내는 시도조차 아직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 실상에서 본다면 이런 노력은 대단한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다.
漢族은 목탑구조에 약하다. 현존하는 佛宮寺의 석가탑은 한족의 건축물이기 보다는 소수민족의 작품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지만 그렇더라도 그 5층팔각탑은 완벽한 구조라고는 하기 어려운 취약성을 지니고 있어 내부 공간을 넉넉히 활용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에 비하면 木壽가 총책임자인 指諭가 되어 1990년대에 신축한 충북 진천의 보탑사 삼층목탑은 1층에서 3층에 이르는 전 공간을 법당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내부구조가 그만큼 활달하게 되었기 때문인데 이런 목탑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이다. 이는 고구려로 부터의 법식과 기법의 전승과 황룡사구층탑과 같은 전대미문의 목탑을 성취한 민족의 긍지에서 이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군총(일본인들이 임시로 정한 명칭이나 이제는 왕릉의 능호陵號를 제대로 찾아 불러야 할 것이다)이 묘탑墓塔이고 이만한 규모라는 것은 거대한 중국에 맞서 살수대첩을 이를 수 있었던 고구려민족의 긍지가 표상된 것이고 한족들의 능묘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낼 고구려의 난숙한 문화가 그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조영이 가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시도된 이 도면은 아직 여러 분야에서 더 완벽하기를 추구해야할 것이므로 완성되었다고는 하기 어렵다. 우리들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그 성취를 위하여 노력할 참이다. 여러분들의 큰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측상단 --목조건축의 모습
좌측하단 --장군총의 평면도, 상단에 난간자리가 보임
우측하단 --현존하는 장군총의 모습
** 고구려 방단건축의 표본인 장군총의 원형탐구를 위한 노력으로 유문룡선생의 실측도와 목조건축을 재현시켜 본 도면을 실어 두고 여러분들의 참여로 무언가 더 성숙되는 단계를 거치고 싶었으나 별다른 관심을 표명하는 분이 아니계셔서 부끄러운 마음에 이 도면을 접어 두었다가 다음 기회에 올리는 것이 합당할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료가 필요한 분은 한옥문화원으로 문의하기를 바라고 있다.
<佛國寺> 책이 서점에 나가자 지금은 <고구려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서 여러가지 자료들을 정리하는 중에 압록강유역 집안(집의 안쪽이란 우리말의 지명인듯 하다. 국내성의 국내가 나라 안이라는 의미나 마찬가지로 생각되니 중국인들이 한자로 集安이라 하던 輯安이라 표기하던 우리는 상관이 없다. '집안'이면 족하기 때문이다.)에 가서 머물 때 유문룡이라는 명인을 모셔다가 장군총을 실측하였던 기록도 다시 살피게 되었다.
그 방단건축은 상단에 난간 세웠던 홈이 파져 있음은 이미 전에 말한 바 있다. 난간을 설치하였다면 당연히 여기 상단에 건축물이 있어야 한다. 건물이 없고서야 난간을 두를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석축의 돌틈에서 기와장들이 나온다는 사실도 이야기 하였고 다시 제자리에 넣고 내려왔다는 점도 알려드렸다.
그렇다는 것은 여기 건축물이 기와를 이은 건물이라는 의미인데 기와를 이었다면 당연히 목조건축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 목조건축은 어떤 모양일까가 우리들의 고심이었다. 우리에게 현존하는 그 계열의 건축물이 없어 참고하기 어렵다는데 까닭이 있었다. 그런 중에 뛰어난 목조건축 조영의 실무와 학술적인 지식이 난숙한, 또한 능력이 탁월한 우리의 유문룡선생이 그 목조건축을 탐구하여 드디어 그 모양을 도면에 그려내었다. 조선일보사가 발행하는 마음으로 보는 우리문화의 네번째 책으로 기획하고 있는 <고구려 사람들의 삶과 문화>의 편집자들의 끈질긴 노력의 덕분이다.
유문룡선생은 아직 완벽하다고는 말하기 힘든 지경의 작품일 뿐이라 하지만 이런 발상과 그려내는 시도조차 아직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 실상에서 본다면 이런 노력은 대단한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다.
漢族은 목탑구조에 약하다. 현존하는 佛宮寺의 석가탑은 한족의 건축물이기 보다는 소수민족의 작품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지만 그렇더라도 그 5층팔각탑은 완벽한 구조라고는 하기 어려운 취약성을 지니고 있어 내부 공간을 넉넉히 활용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에 비하면 木壽가 총책임자인 指諭가 되어 1990년대에 신축한 충북 진천의 보탑사 삼층목탑은 1층에서 3층에 이르는 전 공간을 법당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내부구조가 그만큼 활달하게 되었기 때문인데 이런 목탑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이다. 이는 고구려로 부터의 법식과 기법의 전승과 황룡사구층탑과 같은 전대미문의 목탑을 성취한 민족의 긍지에서 이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군총(일본인들이 임시로 정한 명칭이나 이제는 왕릉의 능호陵號를 제대로 찾아 불러야 할 것이다)이 묘탑墓塔이고 이만한 규모라는 것은 거대한 중국에 맞서 살수대첩을 이를 수 있었던 고구려민족의 긍지가 표상된 것이고 한족들의 능묘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낼 고구려의 난숙한 문화가 그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조영이 가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시도된 이 도면은 아직 여러 분야에서 더 완벽하기를 추구해야할 것이므로 완성되었다고는 하기 어렵다. 우리들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그 성취를 위하여 노력할 참이다. 여러분들의 큰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