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사랑방 제 62화

by 신영훈 posted Apr 0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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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이야기가 너무 무겁다고 하시는 분이 계셔서 이제 좀 가벼운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한다.
나는 한옥의 구석구석에 사랑의 정다운 손길이 닿아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옛날 시골집들을 다녀 보면 그런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데 곰살궂은 염감님들의 그 무딘 투박한 솜씨지만 집 사람의 살림살이에 보템을 주기 위하여 투덕투덕 손질을 해서 요긴하게 사용하게 하려는 마음을 썼다.
여기 시골집 부엌의 판벽에 연기와 수증기가 빠져 나가라고 구멍을 뚫은 영감님도 그런 다정한 마음씨를 발휘하였다. 이제는 하도 오래되어 어느댁이었는지를 기억하기 어려운데 그 때 할아버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생각이 난다.
할아버님 친구중에 목수가 직업인 분이 계셨다. 그 분에게서 연장을 빌어다 부엌의 널빤지에 구멍을 내어 연기에 콜록거리는 마나님을 도와줄 생각이 났다. 막상 구멍을 내려니 어쩔줄을 몰라 하는 참에 그 목수님이  궁금하여 찾아왔다. 연장 다룰줄 모르는 사람이 일 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왔다가 망연해 하는 친구를 위해 이렇게 예쁜 구멍을 뚫어 주고는 막걸리 한 사발 드리키고는 껄껄 웃고 돌아갔단다. 이야기는 단지 그 정도이지만 서로의 마음씨는 수더분하게 두텁다.
전에 어느 목수 한 분이, 아마 황씨였지, 남의 집 퇴마루에 설치할 낮은 난간을 만드는데 그 댁 규수의 그 안존한 자태를 보았다. 과년하였는데도 아직 시집 못간 채라 해서 안스러운 마음에 난간 살대에 복을 받으라고 박쥐무늬를 새기고 돌란대 받는 동자에는 하엽을 새겨 주었다. 어서 복 많이 받고 끼끗하게 시댁에 가서 사랑 받고 잘 살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래서인지 그댁 규수가 그 해 풍년이 들자 시집을 가더란다.
창덕궁 후원에서 본 난간에도 그런 무늬가 있었다. 왕비전에 속한 건물의 난간인데 여기에도 그런 마음이 서려 있는 것일까. 궁의 사람도 마음이야 한가지일 터이니 그렇게 복 받기를 기원하려는 생각은 마찬가지었을 것이고 목수 어른은 그런 터수를 지긋이 살피고는 넌즈시 만들어 놓고 툴툴 털고 일어섰을 법 하다.
이런 마음이 우리 집에 담겨 있다는 점을 나는 참 고맙게 여기고 있다. 집이란 그래야 살맛이 나는것 아닌가 싶다. 어느 집이고 간에.
나는 그래서 한옥을 예찬하지 않고는 못견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