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에 출국하여 미국 L.A(로스엔젤스)에 갔다가 5월 25일에 귀국하였다. 몇 차례에 나누어 그쪽 소식을 전하려 한다.
한국전통정원을 조성하려는 모임인 한국 마당 가꾸기 모임의 송재순 회장님 초청으로 L.A를 방문하게 되었다.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시립 식물원에서 한국인의 모임을 계속하니 그 잔치에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5월 22일에 교민들이 식물원 행사장에 모여 큰 잔치를 벌였다. 경찰악대 반주에 맞추어 우리 어린 소년단 학생들이 줄 지어 태극기를 휘날리며 들어오는 의식으로부터 행사가 시작되었다. 2천명이 넘는 교민들의 진지한 환호 속에서 진행되는 무대에서는 우리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노래와 현대 무용과 초립동이 춤과 화관무, 부채춤 등이 이어졌다. 우리 교민들은 물론 미국에 거주하는 여러 종족들이 함께 참여하여 우리 문화에 매료되어 환호하며, 감탄하면서 즐거워하였다.
나는 외국에 나와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이들을 유심히 관찰하였는데 한국문화에 깊숙이 매료된 분위기가 역력하였다.
점심에 내가 밥 먹는 옆 식탁에 미국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 사람들이 정성들여 마련해온 음식을 돈 주고 사먹으면서 희희 낙락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니 이제 한국문화가 이들에게 끼친 흐름이 만만치 않음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9일에도 이 식물원에 왔었다. 초청한 주최측에서 자기네들이 식물원에서 사용권을 획득한 장소를 가서 보자고 해서 송재순, 김영훈님을 비롯한 여러분들과 동행하여 1차로 방문하였던 것이다. 무성하게 자란 각종 식물이 그득한 터전을 이리저리 지나 언덕이 보이는 터전에 도착하였다. 산기슭이 가슴을 벌려 품어 앉는 듯한 지형을 이룬 언덕이었다. 올라가 보니 우리가 한국에서 더러 즐겨 말하는 이른 바의 명당의 터전과 흡사하였다. 여기에다 장중한 건물을 짓고 마당을 꾸민다면 식물원 전체가 내 안마당이 될법한 분위기도 지녔다.
“송회장님이 복이 많아 이런 명당 터를 구하셨구려” 하였더니 송회장 대답이 걸작이었다. “한국인의 복이지요” 하긴 그렇다. 누구 개인의 복이라기보다는 우리 교민들의 행운이라고 할만 하다. 여기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볼 수 없는 장중한 목조건축을 짓고 마당을 가꾼다면 여기가 한국 문화의 강역임이 분명해 지겠다. 기분 좋은 일이다. 그간의 교민 여러분들의 노고가 보답을 받는 일이기도 하다. 이역만리가 내 문화의 고향이 된다니.
여기에 우리문화의 도독부를 구축하면 어떠하겠느냐의 농담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 도독부의 장중한 건물은 한국교민들이 이주 100주년 기념의 공회당일 수도 있을 것이니 무슨 기념할 일이 있을 때면 이 건물과 그 주변 마당에 모여 기념식도 하고 즐기기도 하면 그야말로 한국문화가 여기에서 꽃을 피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들에게 자랑하며 떳떳하게 행세할 기반이 조성될 것이다. 남에게 자랑할 수 있으면 후손들의 긍지가 되고, 후손들이 선대 여러 어른들의 노고를 찬탄하면 동포들 애정이 돈독해지고 그러면 이웃의 다른 종족들의 부러움을 살 것인즉 이제 마땅히 이 일이 성취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다짐도 있었다.
환한 기대감이 피어오르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막연한 ‘한국마당 만들기 모임’ 보다는 한결 성숙한, 그리고 교민들이 공감할 바탕이 마련되었다고 다들 즐거워하였다.
그날 밤에 나는 그간 애쓴 마당 가꾸기 모임의 여러 임원들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다시 논의 하는 일에 참여하였는데 그 분들은 이제 집행을 감당할 집행부의 모임을 돈독하게 하고 법인을 조성하여 공칭을 얻고 그리고 교민들의 성원을 얻어 이 사업을 추진해 나간다면 명실상부한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확고해졌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한국인들의 슬기롭고 다정한 마음씨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였다.
내가 힘이 있다면 한국에 돌아가 국민에게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리고 그들에게 힘을 보태어 주는 구실을 하였으면 하는 염원을 하게 되었다.
한국문화의 도독부가 L.A에 들어서게 되면 모르긴 해도 이웃 도시의 우리 교민들은 그 도시마다에 그런 도독부를 갖고 싶어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노.
그날 밤 나는 꽃피는 동산을 거니는 밝은 꿈을 꾸면서 시차에 시달리던 몸과 마음을 한껏 풀어내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내년에 도독부 짓는 기공식이라도 성대히 치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과 함께 그 기공식에 다시 한번 참석할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바람에 신이 나서 활갯짓 하다 고만 침대에서 굴러 떨어질 뻔 하였다. 떨어졌다면 낭패의 징조일지도 모르나 다행히 모면하였으니 앞날의 길조인 것이 역력하여 기분 좋게 다시 단 잠에 골아 떨어졌다.
한국전통정원을 조성하려는 모임인 한국 마당 가꾸기 모임의 송재순 회장님 초청으로 L.A를 방문하게 되었다.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시립 식물원에서 한국인의 모임을 계속하니 그 잔치에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5월 22일에 교민들이 식물원 행사장에 모여 큰 잔치를 벌였다. 경찰악대 반주에 맞추어 우리 어린 소년단 학생들이 줄 지어 태극기를 휘날리며 들어오는 의식으로부터 행사가 시작되었다. 2천명이 넘는 교민들의 진지한 환호 속에서 진행되는 무대에서는 우리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노래와 현대 무용과 초립동이 춤과 화관무, 부채춤 등이 이어졌다. 우리 교민들은 물론 미국에 거주하는 여러 종족들이 함께 참여하여 우리 문화에 매료되어 환호하며, 감탄하면서 즐거워하였다.
나는 외국에 나와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이들을 유심히 관찰하였는데 한국문화에 깊숙이 매료된 분위기가 역력하였다.
점심에 내가 밥 먹는 옆 식탁에 미국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 사람들이 정성들여 마련해온 음식을 돈 주고 사먹으면서 희희 낙락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니 이제 한국문화가 이들에게 끼친 흐름이 만만치 않음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9일에도 이 식물원에 왔었다. 초청한 주최측에서 자기네들이 식물원에서 사용권을 획득한 장소를 가서 보자고 해서 송재순, 김영훈님을 비롯한 여러분들과 동행하여 1차로 방문하였던 것이다. 무성하게 자란 각종 식물이 그득한 터전을 이리저리 지나 언덕이 보이는 터전에 도착하였다. 산기슭이 가슴을 벌려 품어 앉는 듯한 지형을 이룬 언덕이었다. 올라가 보니 우리가 한국에서 더러 즐겨 말하는 이른 바의 명당의 터전과 흡사하였다. 여기에다 장중한 건물을 짓고 마당을 꾸민다면 식물원 전체가 내 안마당이 될법한 분위기도 지녔다.
“송회장님이 복이 많아 이런 명당 터를 구하셨구려” 하였더니 송회장 대답이 걸작이었다. “한국인의 복이지요” 하긴 그렇다. 누구 개인의 복이라기보다는 우리 교민들의 행운이라고 할만 하다. 여기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볼 수 없는 장중한 목조건축을 짓고 마당을 가꾼다면 여기가 한국 문화의 강역임이 분명해 지겠다. 기분 좋은 일이다. 그간의 교민 여러분들의 노고가 보답을 받는 일이기도 하다. 이역만리가 내 문화의 고향이 된다니.
여기에 우리문화의 도독부를 구축하면 어떠하겠느냐의 농담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 도독부의 장중한 건물은 한국교민들이 이주 100주년 기념의 공회당일 수도 있을 것이니 무슨 기념할 일이 있을 때면 이 건물과 그 주변 마당에 모여 기념식도 하고 즐기기도 하면 그야말로 한국문화가 여기에서 꽃을 피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들에게 자랑하며 떳떳하게 행세할 기반이 조성될 것이다. 남에게 자랑할 수 있으면 후손들의 긍지가 되고, 후손들이 선대 여러 어른들의 노고를 찬탄하면 동포들 애정이 돈독해지고 그러면 이웃의 다른 종족들의 부러움을 살 것인즉 이제 마땅히 이 일이 성취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다짐도 있었다.
환한 기대감이 피어오르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막연한 ‘한국마당 만들기 모임’ 보다는 한결 성숙한, 그리고 교민들이 공감할 바탕이 마련되었다고 다들 즐거워하였다.
그날 밤에 나는 그간 애쓴 마당 가꾸기 모임의 여러 임원들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다시 논의 하는 일에 참여하였는데 그 분들은 이제 집행을 감당할 집행부의 모임을 돈독하게 하고 법인을 조성하여 공칭을 얻고 그리고 교민들의 성원을 얻어 이 사업을 추진해 나간다면 명실상부한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확고해졌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한국인들의 슬기롭고 다정한 마음씨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였다.
내가 힘이 있다면 한국에 돌아가 국민에게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리고 그들에게 힘을 보태어 주는 구실을 하였으면 하는 염원을 하게 되었다.
한국문화의 도독부가 L.A에 들어서게 되면 모르긴 해도 이웃 도시의 우리 교민들은 그 도시마다에 그런 도독부를 갖고 싶어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노.
그날 밤 나는 꽃피는 동산을 거니는 밝은 꿈을 꾸면서 시차에 시달리던 몸과 마음을 한껏 풀어내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내년에 도독부 짓는 기공식이라도 성대히 치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과 함께 그 기공식에 다시 한번 참석할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바람에 신이 나서 활갯짓 하다 고만 침대에서 굴러 떨어질 뻔 하였다. 떨어졌다면 낭패의 징조일지도 모르나 다행히 모면하였으니 앞날의 길조인 것이 역력하여 기분 좋게 다시 단 잠에 골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