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사랑방 제 74화(L.A 통신 2)

by 신영훈 posted Jun 0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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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교민들의 모임이 끝날 무렵에 식물원 구내의 강당에서 목수가 가지고 간 80매의 슬라이드를 보면서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이 지긋한 분들과 젊은이들이 섞이어 앉았는데 목수는 우리말로 이야기를 하였다. 젊은이들 중에는 우리말에 서툰 사람들도 있었을 터이나 3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듣는 것을 보니 사진에 비추는 영상만 봐도 느낌과 통하는 바가 있나 보다.
목수는 첫인사에서 고구려의 우리 선조들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시던 역동적인 핏줄이 우리에게 흐르고 있어서 여러분들도 이렇게 이역만리에 나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계신다고 찬탄을 하였더니 다들 고개를 주악거려 동의를 표시한다.
목수가 최근에 저술하여 간행한 조선일보 간행의 『고구려』라는 책을 내보이며 이 책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살펴보고 다닌 이야기를 하면서 먼저 목수가 뉴멕시코주 싼타페시 토착민들 살림집이 있는 마을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드렸다. 여름에 허름한 복장 그대로의 모습인데 큰길가에 섰다. 옆의 상점의 둥근 기둥을 배경으로 삼았는데 보는 분들은 같은 미국이라는 친근감과 함께 우리 사람이 거기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목수는 기둥머리에 목침처럼 생긴 나무토막을 올려 위의 무게를 떠받는 구조를 두공斗栱이라 부른다는 점을 설명하고 이런 구조는 전세계 문명국가 건물에는 다 채택되어 있고 심지어 네팔이나 티베트 까지 분포되어 있음을 말하면서 초라하게 생긴 네팔 두공의 사례와 티벹 사원의 고급 두공에 단청까지 화려하게 장식한 것을 보여드리고는 이런 두공은 고구려에도 있었고 그 사례가 4세기에 그린 고구려 벽화에 보인다고 하면서 그 벽화의 두공 사진을 보여드렸다. 이 고구려 벽화의 사례야 말로 아마도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자료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4세기의 작품이라고 설명하였더니 눈이 둥글해 진다.
우리의 것은 다 이웃나라에서 온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배운 이들도 합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눈을 꿈벅거리는 분들은 그런 상식을 가진 분인 것 같다.
고구려 벽화에는 기둥머리에 연꽃을 장식하고 다시 그 위에 주두를 얹고 공포를 구성한 모양을 그린 것이 있다. “고구려에 저런 모양의 것이 있었나 보군”하면서 돌아섰다면 그저 그뿐인데 목수는 인도 부다가야에 가서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대오각성 하셨음을 기념하여 세운 고층의 탑을 보다가 그 기둥에 연꽃을 장식하고 그 위에 주두를 얹은 모양을 보게 되었다. 어느 쪽이 먼저 이룩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고구려 그 유형이 벽화를 그린 화가의 단순한 상상력에서 묘사된 것이 아님을 이로써 알 수 있고 이 유형이 단순히 고구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도에 까지 이르고 있음에서 그 분포된 지역간의 문화교류를 탐구한다면 절대로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고구려문화의 세계성의 일단을 지적하니 적지 아니 놀라워하는 눈치이다.
목수는 이 기념탑의 난간에 장식한 무늬 중에서 반신半身 반수상半獸像을 보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유형에 유사한 모습이다. 목수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같은 유형을 보았다. 고구려의 식견이 상당히 넓은 문화지역을 섭렵하고 있었다는 한 증거라면 이 사실도 우리는 알아두어야 할 것이라 하였더니 다들 동의하는 것 같았다.
그 날 그분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나 어느 우리 중견 학자가 이런 그림은 중국에서 비롯된 것처럼 설명한 글을 책에 발표하였다. 중국에서 간행한 책에 그런 형상이 있으니 아마도 고구려는 그것을 받아다 사용하였을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인도나 그리스의 그 신상들도 다 중국 것을 본받은 것이라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중국문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해서 고구려문화의 세계성을 망각한다면 이는 올바른 해석이라 하기가 어렵다.
고구려 문화의 넓이와 깊이를 이해하지 않은 채로 알기 쉽다고 중국문화에 쏠린다면 오히려 고구려 분들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 저능아가 되기 쉽겠다.  
슬라이드는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사냥장면으로 계속되었다. 이어 이집트 아부셈벨 동굴 큰 방 벽면에 새긴 말이 끄는 수레에 올라 앉아 활을 쏘는 장면을 비추면서 수레의 궁사가 쏘고 있는 활을 우리 고구려 강궁强弓과 비교해 보도록 부탁하였다. 그 활은 분명히 중세 영국 로빈훗의 긴 활 장궁長弓과는 다른 모양이다. 말을 타고 달리며 쏘는 용사들은 강궁이어야  편의하다 서서 쏘는 활과는 다르다. 우리나라는 고구려 이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강궁을 사용하고 있으며 중국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성능을 지니고 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고개를 꺼떡거린다. 어려서 한국의 활터에서 그런 활을 보았기 때문이다. 슬라이드 쇼는 점점 흥미가 더해가나 보다. 다들 숨죽이며 열심히 듣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