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조선 조에서 건축한 건물의 준공 보고서인 의궤儀軌를 읽고 있다. 며칠 째 보고 있는 <中和殿營建都監儀軌>를 다시 꺼내 보고 있는 것이다.
첫머리에 공사를 맡아서 진행시킨 인물들의 명단이 실려 있다. 그 중에 공사의 기술 분야에 종사한 사람들 이름도 보이는데 우리로서는 당시 건축에 참여한 분들의 이름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즐겁다.
지금의 德壽宮인 慶運宮 건설에는 대한제국 이 새로 건축 담당부서로 발족 시킨 營繕司가 주동이 되어서 명단에 국내부대신과 함께 營繕司 主事 李鎬潗, 技師 宋啓昌, 主事 崔元章의 이름들이 열거되어 있다.
공사는 광무5년(1901)7월 13일에 도감을 열고 15일에 營繕司에서 회의를 하고 8월 29일부터 돌을 다듬기 시작하고 9월 초하룻날 목재를 다듬기 시작하면서 일이 본격화 되어 이듬해 정월 29일에 開基하고 3월 보름날 中和殿에 定礎하고 27일 酉時에 立柱, 7월 초이렛날 중화문 定礎, 17일 未時 중화문 立柱, 8월 12일 辰時 중화전 상량, 같은 날 未時에 中和門 상량, 8월 14일에 기와 잇기 시작, 21일에 중화전에 御座와 寶蓋를 설비하고 9월 6일에 中和殿에 懸板하고 18일에 중화문에 현판하였다.
이어 공사한 건물의 도면을 ‘圖說’이라 하고 싣기 시작하였는데 중화전의 2층 건물이 제일 먼저 실렸다. 이는 불에 탄 후 지금처럼 단층으로 짓기 이전의 2층 건물의 모습이어서 우리에게는 기본자료가 될만한 그런 설계도면이다.
**木壽는 아직 이런 도면을 여기에 싣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여 함께 볼 수 있게 하질 못해 미안하다**
이어서 어좌의 모습, 五峰屛이라고 임금님 어탑 뒤에 장치하는 그림, 임금님 앉으신 어탑 뒤로 치는 가리개인 曲屛, 이어 보개 내부 천장의 구름 속에 두 마리 용이 어우러진 조각 장식의 밑그림과 기타 무늬판의 밑그림들이 실렸다.
또 중화전의 건축 규모에 대하여 二十間 御間 十八尺 邊間十四尺 上下層外七包內九包라고 밝히고는 따로 下層이란 란을 마련하고 하층에 쓰인 목재들의 명단을 실었다. 예컨대
高柱 十箇 各長 四十六尺 圓徑 一尺七寸
耳高柱 四箇 各長 三十六尺七寸 圓徑一尺七寸
平柱 十八箇 各長十六尺 圓徑一尺七寸
退樑十四箇 各長十四尺 高兩尺二寸 厚一尺八寸
昌枋十八箇內 二箇 各長二十尺 高一尺七寸 厚一尺五寸
十六箇 各長十五尺 高一尺五寸 厚一尺三寸
등등으로 부재의 규격을 기록하였는데 공포 구성에 소용된 부재들을 ‘初齊工 三十八箇 各長八尺三寸 高八寸 厚四寸’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일이 기록하였다.
이런 기록을 통하여 당시의 건물에 소용된 부재의 규격들을 알 수 있게 되니 도면과 함께 살펴보면 좋은 기본 자료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儀軌를 통한 이런 자료들을 정리하여 건축의 규모와 부재의 크기를 비교 분석하면 아주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木壽는 전에 華城城役儀軌에 실린 자료를 토대로 약간의 분석을 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 바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基本資料의 활용에 인색한 편이다. 우리나라 건축과에 한옥을 가르치는 곳이 있어서 이런 자료들이 가치를 되살릴 수 있다면 오늘의 목조건축은 든든한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