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사랑방 제 121화

by 신영훈 posted Apr 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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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자기를 정리해 보고 싶은 욕망이 떠오를 때가 있다고 하신 말씀을 전에 들으면서 “얼마나 멋진 인생을 사셨으면 저런 말씀을 하실꼬?”하는 생각을 하곤 하였었는데 요즈음 나도 내 일생을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木壽의 한옥탐구 한평생”이란 제목으로 내 인생의 행로를 정리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내 잘났다는 이야기보다는 선생님들 만나 뵙게 되는 人德으로 인해 바뀌어 온 인생의 행로를 되짚어 가며 정리하면, 이 木壽를 지도해  그나마 이만큼의 行路를 걷게 해주신 여러 어른들의 은덕과 인덕을 찬탄드릴 수 있을 것 같다.
  木壽는 국립박물관 兮谷 崔淳雨 선생님을 뵙지 못하였더라면 지금과 같은 내 인생이 될 수 없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혜곡 은사님의 주선으로 林泉선생님을 뵙게 되고 그어른 덕분에 1962년에 서울 남대문 수리공사에 감독관으로 일하게 되면서 李光奎부편수를 만나 뵙게 된다. 이 분들을 그 시절에 뵐 수 없었다면 석굴암 공사에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참여할 수 없었다면 황수영 박사님이나 진홍섭 박사님을 뵙지 못하였을 것임에 지금 같은 탐구가 가능하였을 리 없다.
  혜곡 선생님께서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현지입대를 시켜주신다. 여기서 이우형군과 만난다. 동아방송의 이름난 성우 출신이라 육사에서 그에게 공보부의 일을 맡긴다. 학생들의 작품을 실은 교지를 편집, 간행하는 일을 맡아 삼화인쇄소에 드나들게 되면서 金大璧 선생님과 친근해 지면서 木壽를 소개한다. 그래서 우리 김선생을 뵙게 되었는데 木壽가 그 시절 그 분을 만나 뵙지 못하였더라면 벌써 수십년을 모시고 다니며 수 십 권의 책을 내는 일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니 우리 이우형군의 은덕 또한 내게는 대단한 천행이 아닐 수 없다.
  중앙일보의 이종석 부장, 조선일보의 서희건 부장들과의 만남도 내 인생의 항로가 완전한 새 길을 개척한다.
  수 없이 많은 분들과의 만남의 즐거움이 민학회를 거쳐 해라시아문화연구소 시절을 지나 한옥문화원을 이룩하는 일로 연계된다. 이 항로에서 여러 가지의 恩德과 人德을 누린다.
  이들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간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인생이 한 분야를 탐구하는 항로에서 어떤 일들을 겪게 되었는지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작정이다. 지금도 원고를 쓰다가 이 글에 빠지게 되었는데 왜 이런 글을 쓰는지를 미리 좀 밝혀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분이시던지 목수와 연관된 일중에 “이만하면...”싶은 생각이 나시는 분이 계시면 그 사연을 좀 들려주시면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 소홀하였던 부분을 보충해 나가고 싶다는 욕심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제발덕분에 그런 소식 좀 부탁드립니다. 木壽의 한 평생을 정리하는 일에 협조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탁드려요. 감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