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사랑방 제 122화

by 신영훈 posted May 1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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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한옥 이야기 듣고싶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편에서는 한옥을 지어보고싶다는 소망도 밝히고 있다. 우리 홈페에지에도 한옥을 현대화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고 있다. 좋고 기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문제가 느껴진다. 한옥의 장점을 이야기 하면서 혼돈이 야기되고 있는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도 서양식 건축의 개념을 바닥에 깔고 접근해 보려는 시도가 있는것 같기 때문이다.
1세기 때의 집과 10세기 때의 집이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19세기의 집을 바탕에 깔고 21세기 삶을 접목시키려면 무리가 생긴다. 21세기에는 21세기 한옥을 창출해야 삶이 쾌적한 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고구려분들의 삶터에서 느끼듯이 그 분들은 말을 타고 다니시는 분들이라 방안에 까지 신발을 신고 들어오셔서 의자 놓고 앉거나 좌탑에 좌정하셨다. 그러니 갓 쓰고 도포 입고 사인교에 올라앉아 이동하거나 걸어서 다니던 조선조 시대의 집과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말을 타던 시기의 문은 폭은 알맞게 좁아도 혹 용인되었지만 높이는 말탄 사람의 높이를 고려하고 지어야 되었다. 활이나 검이나 창으로 무장한 채 말을 탄다면 대문의 높이는 더 높아야 출입에 지장이 없었다. 높은 문은 폭이 홀쭉해야 출입구의 직사각형의 구성이 아름답다.

지금 자동차 탄 채로 대문을 느나들고 싶으면 그 문은 폭이 넓어야 한다. 폭이 넓으면 높이가 비례해서 낮아져야 균형이 이룩된다.
이것이 문이 지니는 이치이다. 이런 이치를 무시하면 아무리 재주 있는 이가 집을 지어도 이 시대를 자랑할만한 집으로 완성시키기는 어렵다.
19세기 어제의 집을 오늘의 집으로 고쳐 지으면 곧 그것이 한옥이 된다는 초보자적인 발상은 정작 삶터로서의 좋은 조건을 다 갖추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공과대학에 과연 한옥을 가르치는 '한옥과'가 있는지 잘 모르고 있지만 그런 집중적인 교육이 없었던 처지에서 갑자기 한옥의 전성시대를 구가할 양으로 약진을 하러 든다면 그 일은 한 동안의 과도기를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개념 정리 없이 갑작스러운 유행병에 걸리면 치료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오늘의 한옥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착실히 다진 후에 이 시대의 한옥을 짓는다는 흐름으로 도도히 진출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공감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우리들 이제 부터라도 탐구에 몰두해 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덤벙대다가 뒷날에 후회가 막급이라면 우리 후손들을 볼 면목이 없어지고 만다. 차분히 다져가며 이 시대를 형성하면서 그 흐름을 후대에 넘겨주는 21세기의 지혜를 완성하는 노력을 선행해야 후일에도 차질이 초래되지 않는다.

너무 서두르거나 급하다고 설치면 제대로 될 일을 망친 장본인으로 지목받을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한옥문화원에 모여 진지하게 21세기 한옥을 탐구하면서 토론하고 논의를 거듭한 후에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 21세기 한옥을 완성시키는 과정을 차분히 섭렵한다면 어떠실려는지, 여러분들께 권해 보고싶다. 처음엔 몇몇이 모여 진지하게 탐구하는 일이 시작되면 족할 것이다. 사이비 전문가들은 이 모임에 끼어들지 마셨으면 고맙겠다. 진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