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사랑방 제 126화

by 신영훈 posted Aug 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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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도 한옥과의 만남을 땅끝마을 미황사에서 치루면서 우리들은 매우 큰 즐거움을 맛보았다. 바닷가에 이렇게 이름난 문화의 자취가 곳곳에 스며 있으리고 생각지 못하던 분들에게는 일종의 충격인 모양이다. 그 유적지 중에서 일부만 찾아가 보았지만 우리는 찬찬히 살피면서 우리 어른들이 남기고 가신 발자취의  따끈한 여열을 충분히 맛보면서 즐길 수 있었다.

미황사 부도전에는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색다른 감격이 있었다. 그 대규모의 석재를 이용하여 세운 부도와 비석들은 그야말로 장관이었고, 조성의 기풍이 색달라서 참관하는 이들에게, 다른 곳에서 맛볼 수없는  심금을 울려준다.

우리문화 생성의 근본을 탐구하는 분들은 우리 문화에 북방문화의 성향과 남방 해양문화의 성향이 혼재한다고 지적한다. 말을 타고 대륙의 문화를 누비던 고구려분들의 기마문화와 더불어, 남방에서는 배를 타고 대양을 누비던 배의 문화가 풍요로워서 이 두 문화흐름에서 우리 문화는 이웃나라와 다른 특성 있는 성향을 이룩해 내었다고 말한다.

인도에서 온 공주님이 우리나라 멋진 남성에게 반하여 혼인을 하셨단다. 파사의 탑을 갖고오신 인도 공주님의 자취는 지금도 남쪽 바다의 한 터전에서 이야기를 되짚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인도에서 도착한 금속을 실은 배가 경주에서 머지 않은 바닷가에 도착하는 통에 그 금속으로 황룡사에 거대한 불상을 조성해 모셨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을 우리 문화의 해양성에 삽입한다면 우리문화의 주류에 흐르고 있는 다양성과 함께 다른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특성을 고찰할 수도 있다. 태평양에 흐르는 黑潮가 우리나라 남해와 동해안으로 흘러들므로 해서 태평양과 인도양 혹은 그 서방에서 흘러드는 배에 실린 문화들이 도착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하여 좀더 착실한 탐구를 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아직은 본격적인 탐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처지이니, 이제 우리들이라도 배를 한 척 빌려서 실제로 그리스나 로마문명 지역으로 부터 시작해 해류를 타고 우리나라에 이르는 문화의 자취를 탐구하였으면 좋겠다.    
이런 탐구에 국고를 사용한다고 해서 누가 무어라 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주동이되어 탐사반을 조직하여 진지한 탐구를 감행하였으면 좋겠다. 단번에 성취될 리 없을 것이므로 오랜 세월을 두고 꾸준히 거듭한다면 지금까지의 북방문화 파급에만 몰두하던 탐구의 시야가 훨씬 넓어지면서 한국문화 기반의 참다운 모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런 기획에 참여하실 분들이 계셔서 탐구에 공감하신다면 우리 한옥문화원에서라도 모여 지금까지의 우리들 지식을 정리하고 앞으로 이룩해 나갈 길을 모색하였으면 좋겠다. 진즉 했어야할 일이었다는 후회나 푸념만 되풀이할 일이 아니고 이제부터라도 방안을 모색할 수 있으면 늦었다고 한탄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당당하신 분들이 이 탐구를 주도해 주시면 훨씬 성과를 많이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