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이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 그래도 용하게 100회를 맞이하였다. 많은 분들의 성원이 큰 힘이 되었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드린다.
최근에 1910~40년대 建築雜誌를 훑어보면서 우리 근대건축사의 사료들이 적지 않게 실려 있음을 본다. 1924년도에는 부산항釜山港, 원산元山항, 청진淸津항, 성진城津항과 보조항구로 강원도의 주문진, 경북의 구룡포, 방어진, 감포를 어떻게 조성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물론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나 초기의 실태를 규명하는데 좋은 기본 자료가 될 만 하다. 이어서 인천제분소 건립을 위한 부지 매립이나 지금 문예진흥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서울대학 문리대교실과 의과학 교실이 들어갈 건물이 어떻게 준비되었는지도 알 수 있는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목재공급과 평안남도 성천에서 나오는 대리석에 대한 기록도 있고 서울시내의 빈 집이 1.500호나 있다는 사실, 서울의 도시계획, 일본에 문화를 전달하신 유명한 王仁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부여에 사당을 세우려는 계획,
함흥 본궁의 담장을 수리한 사실과 신의주부청사와 평양에 박물관을 신축하련다는 계획과 인천고녀를 신축하고 평양고보 교사를 개축하고 서울에 법원 건물들을 지으련다는, 옥구군청사, 부산진을 매립하였음도 알 수 있고 서울대학 校舍 신축계획안에 대학본부 254평, 의학부 본관 960평, 법문학부본관 394평, 도서관 298평, 의학부특별교실 569평, 법문학부교실 235평, 의학부강의실 120평을 짓겠다는 방안을 확정하였음도 알게 된다.
지금의 서울시청인 건물을 1925년에 신축하면서 9월 9일 1시에 定礎式을 거행하고 청진소학교를 새로 짓고 서울운동장 건설에 착수하였음을 보고하고 있다.
이들을 차분히 정리하면 기본자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유익할 것이란 생각이지만 나로서는 이 일에 전념할 수 없어 누군가가 이 일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1924년도 11월호에는 서울시청 짓고 있는 모습의 사진과 서울驛舍 사진과 평면도가 게재되어 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지금 볼 수 없는 1900년대 초기의 살림집이나 제주도의 건축들을 보고다니며 기록한 글과 도면 등도 실려 있어서 우리에겐 역시 참고자료가 될 만 하다.
이제 이런 자료가 무엇에 필요하냐고 일본인들 행위를 질시하는 안목도 물론 필요하나 이 땅에 일어 난 건축행위의 전반을 파악할 필요가 있는 이들에게는 이런 자료도 무시할 수 없는 한 시기의 자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