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님의 집이 마을에 있다. 마을은 우리 고향이다. 다정한 얼굴들이 있다.
언제 찾아보아도 포근한 마음씨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마을은 산기슭에 자리잡는
다. 남쪽과 동쪽이 탁 틔어 들이 전개되고, 서쪽과 북쪽이 산등으로 가려져 겨울의
매운 바람을 막아 주면 좋은 자리를 차지한 마을이라고들 칭찬한다.
나도 마을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마을
에서 태어났다.
수 십년, 수 백년을 한 마을에서 살다 보니 마을 사람들 모두가 사철의 변화에 익숙해
지고, 어느 때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다든지 하는 지세(地勢)와 풍토에 달통하였다.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배우고, 어른들은 노인 따라 익히며, 노인들은 현명한 선인
(先人)의 가르침 따라 값진 인생의 삶을 영위한다.
마을에는 각기 그 뿌리와 둥치와 줄기와 가지가 있어서 순서에 따라 노인들은 뿌
리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다. 누구나 결국 가게 될 이 길에는 질서가 있다. 무수한 경
험이 축적된 지혜와 사상이 그 질서를 여물게 하며 그 정도에 따라 마을의 문화의식
은 함양되어 간다.
그 같은 문화 의식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을 바탕으로 하여 싹튼다. 마을은 집으
로 구성되고 집은 의식(意識)으로 지어지며 마음으로 장식된다.
지도가 발달되지 못하였던 시절에는 유능한 청년들은 어른 따라 나라 곳곳을 다
니면서 국토를 익혔다. 화랑들이 곳곳으로 유람하는 업을 이루도록 한 일도 국토 익
히기에 그 목적이 있었다.
전쟁이 터졌을 때 임금이 그 지역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고장인지를 모른다면
대책을 세울 수가 없다. 임금과 수뇌부가 대책을 마련하고 군대를 급파하려 할 때 그
군인들이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몰라 어리둥절이라면 그 전쟁엔 지고 말 수 밖에 없
다.
열심히 터전을 익히고 강역을 살피며 조직하는 일에 마을이 참여한다. 마을이
나라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한 부분을 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마을도 함부
로 조성하지 않았다.
야산이 있는 고장에서 마을은 산기슭에 자리잡는다. 농사 지을 수 있는 들을 중요
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산에는 앞과 뒤가 있다. 앞쪽은 양지가 발라 사람 살기에 편리
하다. 살기 좋은 터전을 고르다 보니 마을들의 모습이 대략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그런 터전에 사는 사람들은 심성도 비슷하게 함양된다.
이해관계에서 마을은 이웃마을과 공동보조를 취하기도 한다. 생활 기반을 수호
하려는 목적이다.
공동보조의 마을 연합이 커지면 힘이 생긴다. 초기의 국가는 그런 힘으로 해서 성립
되곤 하였다.
둘째. 마을의 신성(神聖)
같은 마을이긴 하지만 마을에도 크고 작은 차이가 있고 넉넉하고 넉넉지 못한
구분도 있으며, 출중한 인물이 배출되는 고장도 있고 그런 인물을 배출하지 못한
마을도 있다.
그래서 마을에도 은연중에 위계질서가 생긴다. 그런 여건에서 마을은 조직되고
질서가 유지된다.
양지마을이 있는가 하면 음지마을이 있을 수 있는 것도 그런 조직 때문이다.
그런 조직을 잘 이용한 인물이 부여에서 탈출하여 졸본천변에 나라를 세운
고주몽이다.
그는 마을의 촌장을 포섭하여 여라 마을을 연합하게 하고 그것을 다스리기 시작한다.
고주몽은 하늘의 아들이며 하백녀 자식임을 표방한다. 그리고는 스스로 높은
산 위에 거점을 마련하고 산아래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사는 산을 영산(靈山)이라 하고, 그가 사는 곳을 '검나비
(혹은 감나비)'라고 존숭하였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흘승골성(紇升骨城)이 곧
그곳(현재 중화인민공화국 遼寧省 桓仁縣 소재)인데 해발 800m가 넘는 높은 산에서
당시의 터전을 볼 수 있다.
마을은 그 산 둘레에 들어서고 크고 작은 마을이 조직되면서 고구려가 건국되었
다. 마을은 자연부락에 불과하지만 일단 조직되면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단위체가
되면서 크고 작은 나라 일에 관여한다.
이런 발전과 조직은 비단 고구려에 한정된 일이 아니다. 전세계의 모든 국가에서
공통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이다.
마을은 평화를 유지하지만, 때로 전쟁에 휘말려 황폐화되는 수도 있다. 그런 성패
의 경험에서 공동으로 외경하는 신사(神事)가 생겨났고 신탁에 따른 동제(洞祭)등의
습속이 성사되고 발전하였다.
마을을 단위로 하는 제의(祭儀)가 발전되고 주민들 의식이 관습이 되면서 신사
는 대를 이어 진행되기에 이른다. 오늘에도 볼 수 있는 제의가 마을 사람들 긍지와
단결에 이바지하며 그로 인하여 마을 사람들 상호간의 질서도 유지되고 있다.
마을은 표면으로 보면 집이 들어 선 고장이지만 그 속에는 삶의 터전과 그 문화성
이 담겨있다.
셋째. 마을의 표정
마을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누구든 수 십 년을 외지
(外地)로 돌아다니다가 돌아와도 곧 아는 이를 찾을 수 있을 만큼, 거의 낯익은 채로
남아 있다. 할아버지나 손자나 그 의식이 같은 줄기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
을 우리는 전통이라 한다. 그것이 지닌 보수성으로 해서 강력한 전승력(傳承力)이
있다. 전승력이 강력하면 할수록 변하지 않으며, 모습도 달라지지 않는다.
역사이래 전쟁 때마다 집은 불타고 마을은 잿더미가 되었다. 그러나 그 불탄
자리에 또다시 마을이 생기고 집은 지어졌다.
전쟁은 새로운 정보가 유통되는 구실도 한다. 평소에 보기 어렵던 이웃나라의
문물을 눈여겨보게 되면서 새로 짓는 집에 참신함이 스며들고, 보수적인 마을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여럿이 함께 보고 느꼈기 때문에 그 새로운 문물 채택에는
별다른 저항이 없다.
그래서 5천년이상의 오랜 세월을 지내오며 우리 마을은 조금씩 새로워졌고
기존 의식과 개념에 꾸준히 새로운 것을 축적시켜 왔다. 이것을 흐름 속의 변화라
하고 항심(恒心)속의 변이(變移)라고도 하며, 무변화의 변화라고도 한다. 한옥은
이같이 수 천년이라는 기나긴 흐름 속에서 오늘의 정형(定型)을 갖추게 되었다.
마을에서 이색적인 것을 찾기란 어렵다. 외국과의 교류를 통하여 여러 문화가
수용되어 왔으면서도 그 문화의 파급에 우리의 집이나 마을이 무턱대고 따라 간
예는 없었다.
또 집은 내 손으로 지었다. 아버지도 그러했고 할아버지도 그러했다. 힘에 부치거
나 기술이 모자라면 이웃 사람들의 힘을 빌기도 하였지만 손으로 짓고 마음으로 이룩
하여 집은 완성을 보았던 것이다.
그런 집이 마을을 이루어서 특별한 명품이 따로 조성되지 않았다.
넷째. 마을과 한옥
마을사람들이 짓는 살림집은 어머니가 주도한다. 효자인 아버지는 할머님 말씀
따라 안사람을 염두에 두고 집 짓는다. 집이란 남정네들보다는 여인들에 의하여 지
켜지고 가꾸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 지키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는 여인을 '제집'이라 불렀다. '제집'이 변하
여 '계집'이 되었다는 어른들 말씀에서 우리말의 철학적인 신통성(神通性)을 본다.
제집 지키는 수많은 여인이 모여 사는 곳이 마을이다. 여인들로 해서 마을 관습
은 삶의 기층을 이루었고, 여인을 대표하는 어머니 심성이 마을의 문화를 규범하였
다.
길쌈·김홍도
어머니 문화는 외래 문화에 노출되지 않고, 직접적인 교섭에서도 신중하였다.
그런 품위 있는 처신으로 해서 마을은 긍지를 지켰고 지금도 고추장, 된장, 간장과
김장을 담는 긍지와 즐거움을 고수하며 한식과 한복과 한옥을 간직하고 있다.
간장, 된장 맛이 좋다는 평판이 가문의 영광이다. 그런 명성을 젊은 새댁도 고수
하고 있다. 가문의 긍지를 계승하는 성실성으로 해서 그 문중의 법도와 의지가 모범
이 되고 있다.
그런 문중이 있는 마을의 우리 문화는 남이 넘볼 수 없는 개성을 발휘한다. 이를
고유성이라 한다면 마을 문화는 전통성을 지닌 훈기 넘치는 다정함이 가득한 정서
로 충만되어있다.
그렇던 마을에 전에 없었던 회오리가 몰아쳤다. 서양 문물이 장사꾼에 묻어 들어
오고 개화바람이 불었다. 외세가 소용돌이치면서 대한제국말엽의 혼란이 연출되었
고 나라가 망한다. 이어 남의 지배를 받는 암흑 시대를 거친다. 마을은 무참한 지경
을 헤매게 된다. 그러다가 광복의 감격시대를 맞는다. 그러나 뒤이은 전쟁 발발로 무
참한 피해를 당하고 말았다. 격전지가 된 마을은 쑥밭이 되었고 그렇지 않은 지역이
라 해도 무참한 재해를 당하였다.
마을은 뒤죽박죽의 혼돈에 빠졌다. 이번엔 서구문명의 강풍이 몰아쳤다. 질서의
규범이 서구화하였다. 그런 흐름에 완전히 노출된 마을 여인들은 새로운 사물을 한
꺼번에 그것도 너무 많이 접촉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외세에 편승하는 남자들
고삐를 잡지 못하고 말았다.
이제 발바닥이 대지(大地)로부터 떨어진 상태에서, 여인들은 날뛰는 남정네들의
숨가쁜 동작에 떠밀려 흐르기 시작하였고 전에 겪어 보지 못한 격류에 휩싸이게 되
었다.
떠밀려 흐르다 보니 어느덧 마을이 저만큼 바라다 보이는 강가에 밀려나고 말았
고, 발 아래가 거듭 꺼져 내리는 모래톱에 서서 허우적거리는 경황없는 모습이 되었
다.
그러는 동안에 마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마치 주인을 잃은 듯 제멋대로 변하
고 만 것이다.
다섯째. 마을과 집의 격변
집 짓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집 지어 파는 시장이 들어서자 그
생산성에 밀려 한옥은 차츰 마을에서 외로운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살아가야 할 집을 자신이 지었으나 겉모양만 받아들인 서양
건축은 상업성과 결부되어 하나의 유형이 제대로 정착할 새도 없이 또 다른 유형에
밀려나 마을은 정체성을 잃은 채 밀어닥치는 파도를 타고 일렁일 수밖에 없게 되었
다.
이제는 자기 집을 자기 손으로 짓는다는 일은 꿈속에서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더욱이 전쟁 치른 뒤로 마을은 급격하게 변하였다. 전에 없는 폐허를 경험한 놀
란 가슴에 이번에는 전후복구라는 기세를 타고 들어서는 값싸게 짓는 건물로 해서
여인들은 살림의 정서를 잃었다.
정서가 함몰되니 대대로 이어받던 전승이란 말은 잊혀졌고, 살림살이와 세간들
은 고물장수들의 손에 팔려 나갔으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긍지는 조각이 나서
흩어져 갔다.
외국말을 모르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외국 사람 이름 외우
고, 그 습속을 흠모하며 영화에서 보는 그런 화려함을 동경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자기는 왜소해 지고 자기 집은 초라한 느낌이며 자기 마을은 서양의
비해 너무나 초라한 곳으로 여겨지자 자기 비하의 심리가 팽배하였다. 그런 지경에
서 마을을 허물고 집을 버렸으며, 세간과 살림살이를 던졌고 관습과 문화와 정서를
팽개쳤으며 드디어는 자기 자신마저도 잃었다.
새마을운동의 반문화적 발상은 초가를 없앤 뒤에 들어설 준비를 소홀히 하여서
결과적으로는 내 것 버리고 남의 것을 마을에 들여놓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나 그에
대한 반성보다는 오히려 합리화하며 선양하려 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말았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뒤늦게 정신차리자는 각성의 소리가 일고
다시금 우리를 찾아야 한다는 외침이 고조(高潮)되면서 고향 마을에 대한 향수가 일
었으나, 이미 이때는 집도 포용할 마을도 없어진 뒤가 되고 말았다.
여섯째. 왜 한옥인가
시대가 반전하면서 생각이 서서히 정돈되는 기미를 보인다. 전후의 '하꼬방'에
서 '부록크 집', 그리고 구운 벽돌과 시멘트벽돌을 안팎으로 쌓는 극도의 날림집을
거쳐 다세대주택을 짚고 넘어 극성하는 아파트 도시 속에 살게되었다. 여러 단계를
거친 것이다.
면소재지에까지 고층의 아파트가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는 세태가 되었다. 어디
를 보아도 아파트가 눈에 뜨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집장사들은 대형 아파트 군
을 건설하고 있다.
아파트는 이상형 주거문화를 목표로 하고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사비
가 과다 지출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대형 집장수들에 의하여 상업적 이득을 목표로
세워지고 있을 뿐이다.
살아야 할 사람들의 인간적인 욕구나 자기 개성의 추구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
다. 당첨되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유혹만이 난무할 뿐이다. 집장수의 이득과 경제활
성화라는 국가목표가 부합된다는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극에 달한 아파트의 숲에 주눅이 들면서도 오늘의 현실을 반성해 보려는
기미가 움트고 있다.
"과연 저 건물들의 수명이 다하였을 때, 그 폐기물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이제 이 과제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만큼 공해의 심각성이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 한다. 개성이 돋보이는 민족이 번성하리란 예측이다.
이젠 자기를 주장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견해가 대두되면서 획일적인 아파트에 의문
의 눈초리가 모여들게 되었다.
주택 보급률을 두고 아파트 공덕을 칭송한다. 옳은 평가이다. 문제는 그래도 모자
라 자꾸 짓고 있다는데 있다. 혼자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통계란다. 그들이 만족
할 만큼 집을 지어야 한다면 이는 주택보급률이라는 통상적인 개념에서는 벗어난다.
혼자 사는 이 까지를 포괄할 수 있는 정도가 되려면 인구 1인당 한 채의 집이 있어야
하는 극단의 경우도 이론상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무리이다.
이제 집이 무엇인가의 개념정리를 새롭게 할 필요가 생겼다. 오늘의 사태가 현실
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그것이 우리 삶터로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를 허심하게 정리하
고서, 그것이 지닌 장단점을 탐색하고 추구하여 이 땅에 존재하던 수많은 세월 속의
집들과 비교해 보면서 앞으로 나갈 길을 모색할 시기에 이르렀다고 보이기 때문이
다.
현대의 집이 19세기 목조건축과 다르듯이 21세기 집이 현대건축과 동일해야 할
까닭이 없다. 다를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달라야 하느냐에서 우리는 우리 삶터의
이상성을 추구할 명분을 지니게 된다.
이상성의 추구는 여러 가지 방도가 있다. 어떤 이는 서구 석학들의 견해를 경청해
야 한다면서 그들의 이론을 잔뜩 늘어놓는다. 당연히 참고해야할 이론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곳과 우리네 강역과는 풍토가 다르다. 그들의 이론이 우리와
다른 풍토에 기반을 두고있다면 그 이론은 우리에겐 관념상의 이상성일 수밖에 없
다.
5천년의 역사 기간 동안, 아니 그보다도 더 오랜 세월, 수많은 집이 세워졌고 또
헐려져 갔다. 지금 짓는 집들도 언젠가는 자취를 감출 것이다. 앞으로 더욱 이상적인
집이 우리 마을에 지어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우리는 그런 시기에 대비할 자세
가 필요하다.
21세기의 문화 경쟁시대, 개성시대에는 지역의 독자성이 더 돋보이게 마련이다.
한옥은 그런 면에서 단연 개성적이다.
또한, 21세기는 전자 만능시대이다. 낮에는 그 편리함을 지극히 활용하지만 자는
동안만은 그런 잡다함 속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아늑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한옥의 자재로 쓰여온 천연소재들을 잘 활용하여 전자파를 차단할 수 있는 아늑
한 공간을 구성한다면 그 또한 이상적 21세기 살림집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