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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건축목록 - 문헌상의 건축 1. 한양

by 운영자 posted Dec 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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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상의 건축
역대에 존재하던 건축물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한양

1) 한양 도성

① 궁성(宮城)--둘레1.813보. 높이 21척 1촌. 입문 4곳. 남문 광화문, 옛 이름 정문,
북문 신무,동문 건춘, 서문 영추.

②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 사정전(思政殿), 강령전(康寧殿), 연생전(延生殿), 경성전(慶成殿),
교태전(交泰殿), 함원전(含元殿), 양심당(養心堂), 비현각(丕顯閣), 인지당(麟趾堂),
자미당(紫薇堂), 청연루(淸檗樓), 융문루(隆文樓), 융뮤루(隆武樓), 경회루(慶會樓),
흠경각(欽敬閣), 보루각(報漏閣), 간의대(簡儀臺), 동궁(東宮), 후원(後苑).

③ 창덕궁(昌德宮)

인정전(인정전), 선정전(宣政殿), 보경당(寶慶堂), 동궁(東宮). 후원(後苑).

④ 창경궁(昌慶宮)

명정전(明政殿), 문정전(文政殿), 인양전(仁陽殿), 경춘전(景春殿), 통명전(通明殿),
양화당(養和堂), 여휘당(麗暉堂), 환경전(歡慶殿), 수령전(壽寧殿), 환취정(環翠亭),
선원전(璿源殿), 비궁당(匪躬堂).

⑤ 단묘(壇廟)

사직단(社稷壇), 성황당(城隍堂), 선농단(先農壇), 선잠단(先蠶壇), 우사단(雩祀壇),
영성단(靈星壇), 마조단(馬祖壇), 선목단(先牧壇), 마사단(馬社壇), 마보단(馬步壇),
마제단(?祭壇), 사한단(司寒壇), 명산대천단(名山大川壇), 여단(?壇), 종묘(宗廟),
문소전(文昭殿), 연은전(延恩殿), 효사묘(孝思廟), 독신묘(纛神廟). 문묘(文廟).

⑥ 한양(漢陽)

종친부(宗親府), 의정부(議政府), 충훈부(忠勳府), 돈령부(敦寧府), 의금부(義禁府),
이조(吏曹), 호조(戶曹), 예조(禮曹), 병조(兵曹), 형조(刑曹), 공조(工曹), 사헌부(司憲府),
충익부(忠翊府), 승정원(承政院), 사간원(司諫院), 홍문관(弘文館), 성균관(成均館),
춘관관(春秋館), 상서원(尙瑞院), 예문관(藝文館), 승문원(承文院), 통례원(通禮院),
종부시(宗簿寺), 교서관(校書館), 사옹원(司饔院), 내의원(內醫院), 사복시(司僕寺),
상의원(尙衣院), 군기시(軍器寺), 내자시(內資寺), 내섬시(內贍寺), 군자감(軍資監),
제용감(濟用監), 선공감(繕工監), 사재감(司宰監), 장악원(掌樂院), 관상감(觀象監),
종학(宗學),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 전설사(典設司), 풍저창(豊儲倉), 광흥창(廣興倉),
전함사(典艦司), 전연시(典涓寺), 내수사(內需司), 소격서(昭格署), 사직서(社稷署),
종묘서(宗廟署), 평시서(平市署), 사온서(司?署), 의영고(義盈庫), 장흥고(長興庫),
장원서(掌苑署), 사포서(司圃署), 양현고(養賢庫), 전생서(典牲署), 사축서(司畜署),
조지서(造紙署), 혜민서(惠民署), 도화서(圖畵署), 전옥서(典獄署), 활인서(活人署),
와서(瓦署),귀후서(歸厚署), 중학(中學), 남학(南學), 서학(西學), 동학(東學), 중부(中部),
동부(東部), 남부(南部), 서부(西部), 북부(北部), 내시부(內侍府), 내반원(內班院),
기노소(耆老所).

중추부(中樞府),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의흥위(義興衛), 용양위(龍槐衛), 호분위(虎賁衛),
충좌위(忠佐衛), 충무위(忠武衛), 선전관(宣傳官), 내금위(內禁衛), 훈련원(訓練院),
정로위(定虜衛).

종루(鐘樓), 종각(鐘閣), 태평관(太平?), 모화관(慕華?), 동평관(東平?), 북평관(北平?),
독서당(讀書堂).

제천정(濟川亭), 반송정(盤松亭), 화양정(華陽亭), 낙천정(樂天亭), 칠덕정(七德亭),
망원정(望遠亭), 영복정(榮福亭), 풍월정(風月亭), 황화정(皇華亭), 침류당(枕流堂).

노원역(盧原驛), 청파역(靑坡驛), 보제원(普濟院), 홍제원(洪濟院), 이태원(利泰院),
전곶원(箭串院).

혜정교(惠政橋), 대광통교(大廣通橋), 소광통교(小廣通橋), 통운교(通雲橋),
연지동교(蓮池洞橋), 동교(東橋), 광제교(廣濟橋), 장통교(長通橋), 수표교(水標橋),
신교(新橋), 영풍교(永豊橋), 대평교(大平橋), 송첨교(松畯橋), 영도교(永渡橋),
제반교(濟磐橋), 청파신교(靑坡新橋), 경고교(京庫橋), 홍제교(洪濟橋). 흥천사(興天寺),
내불당(內佛堂), 원각사(圓覺寺), 인왕사(仁王寺), 금강굴(金剛窟), 흥덕사(興德寺),
복세암(福世菴), 장의사(藏義寺), 연굴(演窟), 향림사(香林寺), 석적사(石積寺),
청량사(淸凉寺),중흥사(重興寺), 승가사(僧伽寺), 삼천사(三川寺), 문수사(文殊寺),
진관사(津寬寺), 도성암(道成菴).

백악신사(白嶽神祠), 목멱신사(木覓神祠), 한강단(漢江壇).

⑦ 고적(古跡)

장한성(長漢城), 대성락영(大星落營), 신혈사(神穴寺), 면악(面嶽), 추흥정(秋興亭),
중흥동석성(重興洞石城), 쌍계재(雙溪齋).


경기 감영도·작자미상, 19세기  


2) 조선조말엽 한양성내 건축물들(관아(官衙)건축물의 예)

『한경식략(漢京識崙)』에 따르면 한양기로소(漢陽耆老所)를 비롯하여 84개 관청이 청계천
북방에 산재해 있었다.  지금 제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갑신정변의 장소로 유명한
[우정국(郵政局)]건물뿐인데 이것도 부속건물은 다 잃고 있다.

한말의 경제부처이었던 탁지부(度支部)는 유명한 곳인데 탁지부 관아에 건립되어 있었던 건물
들을 '탁지지'에 기록하였다. 관아건물을 볼 수 있는 삽도와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참고하기에
좋다.

*탁지부--한양 중부 징청방(澄淸坊)에 있었는데 여기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의 좌측,
좌북경(左北京)에 해당하는 지역, 옛날 예조동(禮曹洞)의 동쪽 태복천(太僕川)의 서편,
그 큰길에 면하고 있었다. 청사는 넓직한 장방형 터에 자리잡았다. 청사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뒤쪽은 堂上廳이 그의 부속건물과 더불어 한 구역을 이루었다.

堂上廳은 12간(四面에 退間이 있고 乙坐辛向함)으로 좌우에 兒房이 네간씩 달렸다. 堂上廳에
대하여 南北으로 놓여 南向한 건물, 郞官廳 4간(前退가 있음)이 있는데, 여기에는 入直房 3간
(前退가 역시 있음)과 右房이 2간, 茶廚가 1간, 마구간 한간이 있으며 이 일곽을 정방형에 가
까운 형상으로 싸고도는 庫舍 127간이 있다. (127간은 版籍司庫 52간, 版別庫 44간, 歲幣庫
9간, 雜物高 11간, 銀色庫 4간, 別例房庫 7간으로 구성됨)

이 庫舍가 둘러싼 안마당 중간쯤에 동서로 10步(1步는 6尺), 남북이 13步가 되는 규모의 蓮池
가 있고 池畔에 3간의 蓮亭을 세웠다. 못가의 수양버들이 늘어져 하느적 거리고 연못에 연꽃이
라도 만발하는 때면 일에 시달리던 몸을 쉴겸 이 정자에 모여 酒宴을 베풀기도 하고 時를 짓기
도 하였다.

또 하나의 구역에는 算學廳事 6간, 入直房 1간 반, 廳 3간, 行閣 20간, 庫舍 8간, 中門 1간, 중문
밖으로 書更長房 52간(都事房廳 6간, 房 2간, 版籍司廳 3간, 房 4간, 文書庫 5간, 前例房聽 4간,
房 2간, 文書庫 2간, 別例房庫 3간, 房 2간, 文書庫 5간, 銀色房 1간, 廳 1간, 料祿色房 1간,
廳 1간, 廳 歲幣色房 2간, 廳 2간, 應辦色房 2간, 廳 1간, 別官房 1간, 廳 1간, 別庫房 1간)과
書寫房 1간, 廳 1간, 그리고 庫直上直房 2간, 廳 3간, 使令房 4간과 堂上 三門·中門 1간, 南挾門
1간, 中大門 1간, 挾門 1간, 그리고 대문 1간,과 後門 1간으로 구성되었다.


그림 : 조선조의 度支部 廳舍  


度支部는 이런 本廳舍 외에 闕下侍令別例房이 북부 廣化坊과 창덕궁 金虎門밖에 있었다.
이들 청사는 籌學廳事 2간, 房 1간반, 月廊 4간, 書吏廳事 3간, 방 3간, 庫 3간과 대문 1간,
행랑 3간의 규모이었다. 또 朝房이 세 곳에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慶熙宮(지금의 서울
高等자리) 開陽門 밖에 있었는데 廣化坊의 그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탁지부는 이런 출장소 이외에도 戶曹와 別營에 分所를 두었고 收程所, 司畜署, 司贍寺,
木物庫를 따로 관장하였다. 이들 廳舍建物 규모는 7간 반, 14간, 15간, 18간, 20간, 22간,
50간, 55간 81간, 90간이다.

그 중 81간을 헤아리는 分戶曹의 청사(南部 小公洞에 있었음)는 堂上廳事가 4간, 左右방이
각각 2간, 茶廚 1간과 郞言廳事가 3간, 방 1간, 籌學廳事 4간, 방 2간, 書吏廳事 4간, 방 4간,
庫 13간, 行閣 3간, 마구간 1간, 대문 1간, 南門 한강, 동쪽 문 1간이었다.

이들 모두 기와집이고 行廊, 行閣, 月廊과 庫間은 無拱牙系의 架構法이었고, 堂上廳과 籌學廳은
翼工系이었다.

고려때는 官府(공해)들이 역시 개성, 즉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다.

尙書省은 承休門안에 있는데 省廳은 앞에 大門이 있고 그 좌우로 廊이 10여간 자리잡고 마당
안쪽에 3간의 집이 있어 廳舍가 되니 여기서 공무를 보았다. 尙書省의 서쪽 春宮 남쪽으로 큰
문이 있고 그 안에 세 건물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데 가운데 廳舍가 中書省, 좌측이 門下省,
右便이 樞密院이다.

禮?省은 乾德殿 앞에 八關司는 昇平門 동쪽에, 御史臺는 同德門안에, 翰林院은 乾德殿 서편에,
廣化門밖 官道 북쪽으로 尙書의 戶部가, 그 東에 工部, 大樂局, 良?司가 나란히 자리잡고 南向
하여 있다. 그 맞은 편에 北向한 兵部, 刑部의 세 청사가 줄줄이 있고 거기서 동남쪽으로 가면
數十步 정도에 鑄錢監이 있으며 약간 북편에 將作監이 자리잡고 千牛·金吾 등 三衛가 北門
內에 있다. 大市와 京市는 南大街에 있어 서로 東西로 갈라져 마주보고 있다.

개성은 外城과 內城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관청은 內城에 있었다. 신라나 백제, 고구려
의 관청건물에 대하여는 아직 뚜렸한 위치나 규모가 밝혀져 있지 않다. 막연한 기록만이 약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