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게 매단 종밑에 음통묻어 "에밀레"
• 중국
• 입에 굴곡 터진 입술 새나오듯
• 서양
• 노틀담 곱추 귀멀게한 파열음
• 일본
• 숨 짧아 조선종 가져가려 혈안도
누가 그랬다고 한다.
한국의 종소리 마음으로 듣는 소리, 서양 종소리 귀로 듣는 소리.
서양종은 쇠가 쇠를 때린다. 노트르담사원에서 들었다. 건물내부를 진동시키는 대단히 우렁찬 것이나 날카로운 쇳소리가 섞여 있어 종치기 노트르담 꼽추 의 귀를 멀게 하기에 충분하였을듯 싶다.
한국종은 쇠를 나무공이로 친다. 중국,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되바라진 쇳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차이가 난다. 종 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고 종을 주조하는 기법이 서로 틀린 까닭이다.
중국, 일본 종은 높게 걸고 친다. 단층 종각이나 다락집형 종루를 막론하고 바싹 올려다 매단다. 키 보다 훨씬 높아서 허공에 걸린 종을 치는 공이가 손에 닿지 않는다. 굵은 끈으로 동여매고 그 끈을 힘껏 잡아채야 겨우 종을 때릴 수 있다. 그러니 소리가 우렁찰 수 없고 허공중에서 흩어지고 만다. 더구나 입이 나팔처럼 밖으로 퍼져 있어 소리에 감칠 맛이 없다. 기막힌 기술로 재주껏 녹음하였는 데도 틀어보면 일본종의 소리는 숨이 짧다.
중국종은 입이 수평으로 정리되지 않고 파도 치듯 상하로 굴곡을 주어 요철의 형태로 만든 것이 적지 않다. 중국종을 치면 요철로 인하여 언청이 같은 장애자 처럼 터진 입술에서 숨이 새어 나오듯 여운이 명랑하거나 길지 못하다.
우리는 종을 낮게 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종이 달려 있는 바로 아래 바닥에 반향음통을 묻는다.
6 25사변 직전. 강원도 양양군 선림원 터에서 동종이 출토됐다. 함께 반향음통도 나왔다. 우선 월정사로 옮겨 대웅전 처마 아래에 걸어 두었었다. 전쟁중에 대웅전이 불에 타면서 신라 종은 녹아버려 그 잔품과 반향음통은 국립중앙박물관 창고에 보관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반향음통은 입이 넓고 목이 잘룩하였다가 다시 항아리 처럼 몸뚱이가 커진 형태이다. 재질은 동종과 같다고 여겨지고 있다.
종을 울린다. 종은 치는 자리가 지정되어 있다. 약간 돋워진 둥근 판에 장식을 아름답게한 당좌가 맞는 자리이다. 맞으면 종은 부들부들 떤다. 제일 얇은 부분이 격렬하게 경련한다. 거기에서 소리가 발생한다. 일격하면 쇳소리의 파열음이 생긴다. 그 소리는 듣기에 즐겁지 않다. 신라인들은 파열음을 재빨리 제거하기 위하여 종뉴 옆에 소리통(용통)을 만들어 세웠다. 그것의 표면을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중국, 일본 종에는 이런 순음을 얻기 위한 과학적 장비가 없다.
파열음이 제거된 후의 소리가 종 내부 공동에서 소용돌이 치면서 입 쪽으로 몰리는데 입의 내벽이 실측도에서 보듯이 안으로 오므라져 있어서 소리가 머문다. 머물렀던 소리가 쏟아지면서 따로 땅에 묻은 방향음통으로 떨어지면 다시 소용돌이 치다가 울어나와 메아리를 이끌며 멀리 퍼져 나간다. 긴 여운이 지속된다. 다른 나라 종에서 들을 수 없는 차분한 소리의 여운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종소리의 여운이 에밀레- 한다고 해서 에밀레종이라는 별호가 붙었다고 한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이다. 아이가 녹이는 쇳물로 뛰어들어 비로소 큰종이 완성되었고 그 아이가 우는 구슬픈 소리가 종소리에 잠겼다는 설화를 남겼다. 그만큼 명품의 완성이 어려웠었다는 이야기다. 현존 하는 몇 되지 않는 우리 종 만으로도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명품을 만들어 내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 우리 종이 몹시 부러웠던 모양이다. 수시로 발호하던 왜구들의 약탈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왜구는 감히 감은사에도 달려든다. 문무왕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던 절이다. 욕진왜병(왜병을 무찌르겠다)을 목표로 한 서원이 어린 곳이다.
왜구들이 절의 큰종을 몰래 갖고 간답시고 서두르다가 절앞 큰개울에 빠뜨렸다. 그래서 개울 이름이 대종천이 되었는데 지금도 나라에 큰 일이 닥칠 때는 종소리가 울린다고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그들은 또 문화 왜곡도 하였다. 임진왜란 직후 다급해진 에도막부(강호의 덕천가강)는 통호를 재개하고 싶어 대마도 사람들을 시켜 교섭하게 한다. 조선왕조에서는 얼른 응하지 않는다.
에도가 다급해 졌다. 조선정부가 다시 통교하기를 드디어 응하고 그 증거로 종을 헌납하였다고 거짓으로 고하면서 만든 종이 지금 동경 근방 일광(닛고) 도쿠가와(덕천가강) 사당에 걸려있다. 종의 설명판에 그런 내용을 쓰고 명문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는 종이 한국종과 다르다. 입언저리를 밖으로 퍼지게 한 왜종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당장 누가 보아도 조선종이 아니다.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을 두고 밉상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문화왜곡도 있다. 이에 대하여는 무엇이라 해야 하는지 아직 우리는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괘씸한 일이다.
<글=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05.23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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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 입에 굴곡 터진 입술 새나오듯
• 서양
• 노틀담 곱추 귀멀게한 파열음
• 일본
• 숨 짧아 조선종 가져가려 혈안도
누가 그랬다고 한다.
한국의 종소리 마음으로 듣는 소리, 서양 종소리 귀로 듣는 소리.
서양종은 쇠가 쇠를 때린다. 노트르담사원에서 들었다. 건물내부를 진동시키는 대단히 우렁찬 것이나 날카로운 쇳소리가 섞여 있어 종치기 노트르담 꼽추 의 귀를 멀게 하기에 충분하였을듯 싶다.
한국종은 쇠를 나무공이로 친다. 중국,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되바라진 쇳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차이가 난다. 종 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고 종을 주조하는 기법이 서로 틀린 까닭이다.
중국, 일본 종은 높게 걸고 친다. 단층 종각이나 다락집형 종루를 막론하고 바싹 올려다 매단다. 키 보다 훨씬 높아서 허공에 걸린 종을 치는 공이가 손에 닿지 않는다. 굵은 끈으로 동여매고 그 끈을 힘껏 잡아채야 겨우 종을 때릴 수 있다. 그러니 소리가 우렁찰 수 없고 허공중에서 흩어지고 만다. 더구나 입이 나팔처럼 밖으로 퍼져 있어 소리에 감칠 맛이 없다. 기막힌 기술로 재주껏 녹음하였는 데도 틀어보면 일본종의 소리는 숨이 짧다.
중국종은 입이 수평으로 정리되지 않고 파도 치듯 상하로 굴곡을 주어 요철의 형태로 만든 것이 적지 않다. 중국종을 치면 요철로 인하여 언청이 같은 장애자 처럼 터진 입술에서 숨이 새어 나오듯 여운이 명랑하거나 길지 못하다.
우리는 종을 낮게 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종이 달려 있는 바로 아래 바닥에 반향음통을 묻는다.
6 25사변 직전. 강원도 양양군 선림원 터에서 동종이 출토됐다. 함께 반향음통도 나왔다. 우선 월정사로 옮겨 대웅전 처마 아래에 걸어 두었었다. 전쟁중에 대웅전이 불에 타면서 신라 종은 녹아버려 그 잔품과 반향음통은 국립중앙박물관 창고에 보관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반향음통은 입이 넓고 목이 잘룩하였다가 다시 항아리 처럼 몸뚱이가 커진 형태이다. 재질은 동종과 같다고 여겨지고 있다.
종을 울린다. 종은 치는 자리가 지정되어 있다. 약간 돋워진 둥근 판에 장식을 아름답게한 당좌가 맞는 자리이다. 맞으면 종은 부들부들 떤다. 제일 얇은 부분이 격렬하게 경련한다. 거기에서 소리가 발생한다. 일격하면 쇳소리의 파열음이 생긴다. 그 소리는 듣기에 즐겁지 않다. 신라인들은 파열음을 재빨리 제거하기 위하여 종뉴 옆에 소리통(용통)을 만들어 세웠다. 그것의 표면을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중국, 일본 종에는 이런 순음을 얻기 위한 과학적 장비가 없다.
파열음이 제거된 후의 소리가 종 내부 공동에서 소용돌이 치면서 입 쪽으로 몰리는데 입의 내벽이 실측도에서 보듯이 안으로 오므라져 있어서 소리가 머문다. 머물렀던 소리가 쏟아지면서 따로 땅에 묻은 방향음통으로 떨어지면 다시 소용돌이 치다가 울어나와 메아리를 이끌며 멀리 퍼져 나간다. 긴 여운이 지속된다. 다른 나라 종에서 들을 수 없는 차분한 소리의 여운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종소리의 여운이 에밀레- 한다고 해서 에밀레종이라는 별호가 붙었다고 한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이다. 아이가 녹이는 쇳물로 뛰어들어 비로소 큰종이 완성되었고 그 아이가 우는 구슬픈 소리가 종소리에 잠겼다는 설화를 남겼다. 그만큼 명품의 완성이 어려웠었다는 이야기다. 현존 하는 몇 되지 않는 우리 종 만으로도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명품을 만들어 내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 우리 종이 몹시 부러웠던 모양이다. 수시로 발호하던 왜구들의 약탈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왜구는 감히 감은사에도 달려든다. 문무왕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던 절이다. 욕진왜병(왜병을 무찌르겠다)을 목표로 한 서원이 어린 곳이다.
왜구들이 절의 큰종을 몰래 갖고 간답시고 서두르다가 절앞 큰개울에 빠뜨렸다. 그래서 개울 이름이 대종천이 되었는데 지금도 나라에 큰 일이 닥칠 때는 종소리가 울린다고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그들은 또 문화 왜곡도 하였다. 임진왜란 직후 다급해진 에도막부(강호의 덕천가강)는 통호를 재개하고 싶어 대마도 사람들을 시켜 교섭하게 한다. 조선왕조에서는 얼른 응하지 않는다.
에도가 다급해 졌다. 조선정부가 다시 통교하기를 드디어 응하고 그 증거로 종을 헌납하였다고 거짓으로 고하면서 만든 종이 지금 동경 근방 일광(닛고) 도쿠가와(덕천가강) 사당에 걸려있다. 종의 설명판에 그런 내용을 쓰고 명문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는 종이 한국종과 다르다. 입언저리를 밖으로 퍼지게 한 왜종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당장 누가 보아도 조선종이 아니다.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을 두고 밉상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문화왜곡도 있다. 이에 대하여는 무엇이라 해야 하는지 아직 우리는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괘씸한 일이다.
<글=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05.23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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