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수도, 백제유적 대책 있나 (중앙일보)

by 운영자 posted Jul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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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훈 한옥문화원 원장.전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몇 해 전 고속철도가 신라의 고도(古都)인 경주를 지나간다는 계획이 수립되었을 때 많은 문화국민이 반대의사를 표명했었다.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경주로 철도가 지나가면 문화유적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 당시의 우려였다.

경주는 고도답게 보존되어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현대도시 기반 조성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문화의식이 높은 국가일수록 역사.문화 유적은 최우선 가치로 소중히 보존되며, 그럴수록 세계인들로부터 높이 평가받고, 나아가 최고급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충남 공주와 연기군에 새로운 도시가 들어설 가능성이 커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있다. 공주가 백제의 수도였던 것은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안다.

몇해 전 조폐공사의 공주 이전계획 발표 당시, 공사를 유치하면 상당한 경제적 이득이 보장됨에도 불구하고 고도를 보존키로 마음을 합하여 계획을 무산시킨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또한 도심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지 않도록 해 도시의 문화.역사.경관이 망가지는 것을 막으려 애쓰고 있다. 향리에 대한 공주 사람들의 자부심과 애착이 이런 정도다.

석장리 유적은 이 지역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음을 알려 주는 소중한 자료이고 고인돌.선돌.독무덤 등등 많은 청동기시대의 유물도 우리에게 그 시대를 파악하는 실마리를 주고 있다. 연기군의 작은 절에서도 백제 말기의 비상(碑像.국보 제108호) 등 여러 유물들이 발견돼 크게 각광받았었다. 또 무령왕릉 발굴은 공주를 일약 세계적인 문화 고도로 알려지게 했다.

공주시 관할구역에는 2004년 현재 국보 17점과 보물 18점, 사적 6개소가 국가지정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그외의 유물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정도다. 이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그렇다는 것이고 석장리 구석기 유물층에서 알 수 있듯 금강유역에는 중요한 유적지 존재 가능성이 더 크다. 대책없이 터를 파다가 유적지가 나온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에 대한 충분한 사전조사와 대비가 먼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그 일을 전담하는 국가기관이 있고, 충분한 기술수준도 있으니 어려울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요즈음 논의되어 가는 추세를 보면 이런 문화적 측면에는 거의 언급이 없고 염려하는 기색도 없어 걱정이 되는 것이다.

유물층이 출현하면 그 터전은 그 문화지층의 보존을 위해 국가유적지로 지정하고 보존해야 한다. 문화국민이나 문화국가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문화의식도 그렇게 하는 일에 익숙해 있다.

유적지가 도시 곳곳에 자리잡게 된다면 도시 기능이 유연하지 못할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그런 곳에 새 도시를 건설한다면 그 명분은 무엇인가? 명분이 분명하지 못하면 오히려 유물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수도 건설을 감행하고도 공주의 명맥을 끊었다는 지적과 함께 백제를 두 번 죽였다는 후인들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백제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해 수도를 공주로 옮겼으나 국세를 진작시키려는 의도로 공주에서 부여로 천도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건국 후 계룡산 신도안을 새 도읍지로 정하였으나 수도 건설에 착공하자마자 계획을 바꾸어 한양으로 도읍을 삼았다.

우리는 많은 경우 선인들의 전철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역사가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봉 정도전은 깊이 생각하고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며 경복궁의 임금님 편전을 사정전(思政殿)이라 이름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부디 선지식들의 교훈을 돈독히 고려하면서 신중히 판단해 후일 이 시대가 합리적인 문화의 시대였다는 후손들의 찬탄을 듣게 되기를 당부한다.
신영훈 한옥문화원 원장.전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2004.07.27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7-16 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