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벽, 마룻바닥, 미닫이문…
`새집증후군 ? 얼씬도 못하죠`
한옥 개량해 사무실로 쓰기도
▶ 서울 창천동 김현희씨의 아파트 거실. 벽과 천장엔 닥지를 발랐고 바닥엔 마루를 깔았다. 덩치 큰 가구 대신 붙박이장과 같은 수납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한옥적인 공간을 살리는 요령이다. 사진 주위의 문은 한옥을 사옥으로 쓰고 있는 아름지기의 출입문을 이미지로 처리한 것.
김춘식 기자
▶ 서울 안국동 아름지기의 사무실. 고개를 들면 서까래가 그대로 보여 20평 이지만 제법 탁 트인 느낌을 준다. 기능성을 잘 살려 ‘한옥은 불편하다’는고정관념을 깼다. 일반인도 둘러볼 수 있다. 강정현 기자
▶ 아파트에서 한옥의 멋을 살리려면 가구에 대한 센스가 필요하다. 닥지로 도배한 벽면에 자그마한 고가구를 놓아두면 벽의 여백이 살아난다. 여유가 있으면 TV수납용 가구를 짜는 것도 공간을 살리는 방법이다.
한옥살이는 더이상 낡은 유물이 아니다. 아파트나 사무실에도 한옥의 멋과 기능을 적용해 보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강화도 덕진진 산기슭. 중년의 주부, 중소기업 사장, 건축을 배우는 학생 등 20여명이 모였다. 오늘의 생활에맞게 지은 한옥 살림집 '학사재(學思齋)'를 보기 위해서다. 이날 모임은 전통 주거문화를 연구하는 한옥문화원이 주관했다.
"마당에 깔린 건 백토예요. 사람이 걸어다니면 사박사박 발소리가 나죠. 창호지 바른 문 안에서 발소리만 들어도 임 오신 걸 알 수 있지요."
이 집을 설계한 신영훈(69) 한옥문화원장이 구석구석을 돌며 설명했다. 그는 "한옥은 나무.돌.흙으로 지어 새집증후군의 우려가 없다. 창호지문은 빛과 공기를 거르는 필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견학에 참가한 이화숙(61)씨는 "이제는 한옥처럼 비워가며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며 "당장 지금 살고 있는 단독주택에 응용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도시 주거형태의 중심이 돼버린 아파트에 한옥의 멋과 구조를 도입한 사례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삼성아파트 12층. 육중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구둣발에 밟히는 건 의외로 나무다. 눈앞엔 모시 조각보가 걸려 있다. 중문(中門) 역할을 하는 반투명의 조각보는 이곳에서 살고 있는 자수명장 김현희(58.여) 씨의 작품.
44평형 아파트의 모든 벽엔 닥지를 발랐고 모든 바닥엔 마루를 깔았다. 베란다의 철제 난간은 나무로 짠 격자 난간 뒤로 가려 있다. 화초로 가득한 베란다로 통하는 문도 한지 바른 미닫이문이다. 천장이 낮아보여 싫다며 조명도 벽면으로 숨겼고, 손님들이 모여 TV나 보고 있어야 쓰겠느냐며 TV는 안방에 뒀다.
응접세트랄 것은 평상 두 개와 나무탁자. 평상 위엔 방석과 쿠션을 놓았고 다른 평상은 장식장으로 쓰고 있다. 김씨는 "평상 두 개를 붙이면 손님상, 제자들 가르칠 책상이 되죠. 소파를 두면 자꾸 누워 자게 돼 게을러지지 않나요"라며 웃는다.
아파트에 입주한 건 2002년 12월. 한달간 바닥과 도배 공사를 했다. 비용은 7000만원 가량.
"한지는 밀가루풀을 쑤어 발랐고, 마룻바닥도 접착제 안 쓰고 끼워 맞춘 거예요. 그 때문인지 '새집 냄새'는 못 느끼고 산 편이지요."
이외에도 민간단체 아름지기의 사옥은 한옥의 사무공간화에 성공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9년 상량한 한옥을 개축한 집으로 'ㅁ'자형 구조의 왼쪽 대청은 책상 세 개를 놓은 입식 사무공간, 오른쪽 대청은 작은 탁자를 둔 좌식 회의공간이 됐다.
"이 집이 20평이라고 하면 다들 놀라요. 흔히 서구 입식 공간에 맞게 디자인된 큰 가구를 채워 넣고 사니 30, 40평 아파트도 좁아 보이는 것 아닌가요?"(정민자 아름지기 고문)
정 고문은 ▶부엌.욕실 등의 입식 공간은 그대로 두고▶붙박이장을 활용해 실평수보다 공간을 넓게 사용하는 것이 한옥에서 편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권근영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 한옥 분위기 내고싶다면…
■아파트에서 한옥 분위기 내기
▶한지 바른 벽은 최고의 인테리어. 닥지나 태지는 일반 지물포에서도 구할 수 있다. 한지 벽에 커튼은 안 어울린다. 발을 활용하자.
▶방바닥엔 장판을 깔자. 물에 불린 날콩을 자루에 담아 며칠간 바닥을 문질러 길들이는 콩댐으로 은은한 빛과 향을 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 번거롭다면 장판에 유광 니스를 칠한 뒤 무광 니스를 덧발라 번쩍임을 죽이는 방법도.
▶방문과 창문을 창호지 문으로 새로 짜보자.
▶방 하나만이라도 한실로 꾸며 서재.사랑방.손님방.다실로 쓰자.
▶베란다는 트지 말고 그대로 두자. 한옥의 처마는 직사광선을 막고 바깥과 실내 공기의 완충지가 돼 공기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발을 치고 대나무 화분 몇 개만 놓아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한옥을 느끼려면
▶한옥문화원=한옥 관련 강좌가 있다. 되살림 가구를 보러 장한평을 찾고, 한옥같은 아파트를 방문하는 등 현장강의도 풍부하다. 종로구 원서동 소재(www.hanok.org, 02-741-7441).
▶서울 북촌한옥마을=종로구 가회동.재동.안국동 일대의 한옥이 모여 있는 곳. 재단법인 아름지기 사옥.서울게스트하우스.북촌문화센터.민화박물관 등 일반에 개방된 한옥들이 있다 (02-3707-8388).
▶전주한옥마을=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과 풍남동 일대. 지은지 50~100년 된 고풍스런 한옥 800여채가 밀집돼 있다 (전북관광협회:063-287-0533).
김춘식 기자 [kimcs962@joongang.co.kr]
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2004.10.24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7-16 13:30)
`새집증후군 ? 얼씬도 못하죠`
한옥 개량해 사무실로 쓰기도
▶ 서울 창천동 김현희씨의 아파트 거실. 벽과 천장엔 닥지를 발랐고 바닥엔 마루를 깔았다. 덩치 큰 가구 대신 붙박이장과 같은 수납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한옥적인 공간을 살리는 요령이다. 사진 주위의 문은 한옥을 사옥으로 쓰고 있는 아름지기의 출입문을 이미지로 처리한 것.
김춘식 기자
▶ 서울 안국동 아름지기의 사무실. 고개를 들면 서까래가 그대로 보여 20평 이지만 제법 탁 트인 느낌을 준다. 기능성을 잘 살려 ‘한옥은 불편하다’는고정관념을 깼다. 일반인도 둘러볼 수 있다. 강정현 기자
▶ 아파트에서 한옥의 멋을 살리려면 가구에 대한 센스가 필요하다. 닥지로 도배한 벽면에 자그마한 고가구를 놓아두면 벽의 여백이 살아난다. 여유가 있으면 TV수납용 가구를 짜는 것도 공간을 살리는 방법이다.
한옥살이는 더이상 낡은 유물이 아니다. 아파트나 사무실에도 한옥의 멋과 기능을 적용해 보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강화도 덕진진 산기슭. 중년의 주부, 중소기업 사장, 건축을 배우는 학생 등 20여명이 모였다. 오늘의 생활에맞게 지은 한옥 살림집 '학사재(學思齋)'를 보기 위해서다. 이날 모임은 전통 주거문화를 연구하는 한옥문화원이 주관했다.
"마당에 깔린 건 백토예요. 사람이 걸어다니면 사박사박 발소리가 나죠. 창호지 바른 문 안에서 발소리만 들어도 임 오신 걸 알 수 있지요."
이 집을 설계한 신영훈(69) 한옥문화원장이 구석구석을 돌며 설명했다. 그는 "한옥은 나무.돌.흙으로 지어 새집증후군의 우려가 없다. 창호지문은 빛과 공기를 거르는 필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견학에 참가한 이화숙(61)씨는 "이제는 한옥처럼 비워가며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며 "당장 지금 살고 있는 단독주택에 응용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도시 주거형태의 중심이 돼버린 아파트에 한옥의 멋과 구조를 도입한 사례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삼성아파트 12층. 육중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구둣발에 밟히는 건 의외로 나무다. 눈앞엔 모시 조각보가 걸려 있다. 중문(中門) 역할을 하는 반투명의 조각보는 이곳에서 살고 있는 자수명장 김현희(58.여) 씨의 작품.
44평형 아파트의 모든 벽엔 닥지를 발랐고 모든 바닥엔 마루를 깔았다. 베란다의 철제 난간은 나무로 짠 격자 난간 뒤로 가려 있다. 화초로 가득한 베란다로 통하는 문도 한지 바른 미닫이문이다. 천장이 낮아보여 싫다며 조명도 벽면으로 숨겼고, 손님들이 모여 TV나 보고 있어야 쓰겠느냐며 TV는 안방에 뒀다.
응접세트랄 것은 평상 두 개와 나무탁자. 평상 위엔 방석과 쿠션을 놓았고 다른 평상은 장식장으로 쓰고 있다. 김씨는 "평상 두 개를 붙이면 손님상, 제자들 가르칠 책상이 되죠. 소파를 두면 자꾸 누워 자게 돼 게을러지지 않나요"라며 웃는다.
아파트에 입주한 건 2002년 12월. 한달간 바닥과 도배 공사를 했다. 비용은 7000만원 가량.
"한지는 밀가루풀을 쑤어 발랐고, 마룻바닥도 접착제 안 쓰고 끼워 맞춘 거예요. 그 때문인지 '새집 냄새'는 못 느끼고 산 편이지요."
이외에도 민간단체 아름지기의 사옥은 한옥의 사무공간화에 성공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9년 상량한 한옥을 개축한 집으로 'ㅁ'자형 구조의 왼쪽 대청은 책상 세 개를 놓은 입식 사무공간, 오른쪽 대청은 작은 탁자를 둔 좌식 회의공간이 됐다.
"이 집이 20평이라고 하면 다들 놀라요. 흔히 서구 입식 공간에 맞게 디자인된 큰 가구를 채워 넣고 사니 30, 40평 아파트도 좁아 보이는 것 아닌가요?"(정민자 아름지기 고문)
정 고문은 ▶부엌.욕실 등의 입식 공간은 그대로 두고▶붙박이장을 활용해 실평수보다 공간을 넓게 사용하는 것이 한옥에서 편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권근영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 한옥 분위기 내고싶다면…
■아파트에서 한옥 분위기 내기
▶한지 바른 벽은 최고의 인테리어. 닥지나 태지는 일반 지물포에서도 구할 수 있다. 한지 벽에 커튼은 안 어울린다. 발을 활용하자.
▶방바닥엔 장판을 깔자. 물에 불린 날콩을 자루에 담아 며칠간 바닥을 문질러 길들이는 콩댐으로 은은한 빛과 향을 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 번거롭다면 장판에 유광 니스를 칠한 뒤 무광 니스를 덧발라 번쩍임을 죽이는 방법도.
▶방문과 창문을 창호지 문으로 새로 짜보자.
▶방 하나만이라도 한실로 꾸며 서재.사랑방.손님방.다실로 쓰자.
▶베란다는 트지 말고 그대로 두자. 한옥의 처마는 직사광선을 막고 바깥과 실내 공기의 완충지가 돼 공기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발을 치고 대나무 화분 몇 개만 놓아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한옥을 느끼려면
▶한옥문화원=한옥 관련 강좌가 있다. 되살림 가구를 보러 장한평을 찾고, 한옥같은 아파트를 방문하는 등 현장강의도 풍부하다. 종로구 원서동 소재(www.hanok.org, 02-741-7441).
▶서울 북촌한옥마을=종로구 가회동.재동.안국동 일대의 한옥이 모여 있는 곳. 재단법인 아름지기 사옥.서울게스트하우스.북촌문화센터.민화박물관 등 일반에 개방된 한옥들이 있다 (02-3707-8388).
▶전주한옥마을=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과 풍남동 일대. 지은지 50~100년 된 고풍스런 한옥 800여채가 밀집돼 있다 (전북관광협회:063-287-0533).
김춘식 기자 [kimcs962@joongang.co.kr]
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200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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